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주인공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작고 여린 몬족 소년 타오에게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친다. 거친 대화를 들려주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잘 있었냐, 사기꾼 이탈리아놈아.” “대박이네, 멍청한 폴란드인과 찢어진 눈이라니(Polack & Chink).”

‘찢어진 눈(칭크)’으로 불리는 외꺼풀 눈은 서양인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불거진 광대뼈는 그 다음이다. ‘미녀 삼총사’의 루시 리우. ‘그레이 아나토미’의 산드라 오, ‘사무라이 걸’의 제이미 정 등 미국에서 뜬 동양계 배우에 쌍꺼풀이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국내에서도 외꺼풀 눈이 뜬다는 소식이다. 피겨선수 김연아, 가수 박정현, 모델 장윤주,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원더걸스의 소희 등 외꺼풀 스타가 늘면서 외꺼풀 대세론까지 대두된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인기몰이 중인 김수현도 외꺼풀이니 이래저래 더 퍼지게 생겼다.

외꺼풀이 왜 뜨는지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비슷비슷한 쌍꺼풀 눈에 질렸다, 가로로 긴 외꺼풀 눈이 쌍꺼풀 눈보다 신비롭고 그윽하다, 웃을 때 반달눈을 만들어 살인미소를 완성시킨다 등. 눈 화장에 따라 청순함과 팜므파탈적 분위기 모두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한몫한다고 한다.

[천자칼럼] 외꺼풀 대세론
외꺼풀이 일시적 유행으로 지나갈지 진짜 대세가 될진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행은 무섭다. 이상하고 어색하게 보이던 것도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얼마 못가 사그라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가파른 턱만 해도 요즘엔 미남의 기준으로 여겨지지만 과거엔 기피 대상이었다. ‘하관이 빠르면 말년복이 없다’는 이유였다.

복스럽다며 사랑받던 달덩이 같은 얼굴이 못난이의 대명사로 바뀐 것도 마찬가지. 남성의 경우 쌍꺼풀이 짙으면 자칫 느끼해 보인다. 여성 역시 없던 쌍꺼풀을 만들면 선하던 인상이 변하거나 눈가에 주름이 잡힐 수 있다. 주름 때문에 보톡스를 맞으면 눈매는 물론 얼굴 전체가 딱딱해지기 일쑤다.

외꺼풀 확산엔 아무래도 김연아 같은 톱스타의 눈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외꺼풀 눈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게 입증된 까닭이다. 미국에선 최근 스포츠채널 ESPN이 대만계 프로농구 선수 제레미 린에게 ‘찢어진 눈’이란 표현을 썼다 혼쭐이 났다. 사랑과 인기는 틀에 박힌 기준이 아니라 실력과 힘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