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국가대표 만화가가 30년 만에 쓴 정통 역사극, 정복자 아닌 인간 칭기즈칸 그려
허영만 씨(65·사진)는 ‘국가대표 만화가’다. 그만큼 히트작을 많이 낸 만화가도 드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날아라 슈퍼보드》, 어른들이 열광하는 《타짜》, 《식객》등이 다 그의 작품이다. 인간 칭기즈칸을 그린 최신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이하 ‘말무사’)》(월드김영사)도 화제다.

《말무사》는 허 화백이 1974년 《각시탈》, 1982년 《쇠퉁소》 이후 30년 만에 쓰는 정통 역사극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부족에게 버림받았으며 원수에게 사로잡혀 노예 생활을 하던 소년이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지배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첫 구상에서 취재와 집필까지 10여년이 걸렸다. 2010년 10월부터 한 인터넷 포털에 연재하고 있으며, 최근 3~4권을 동시 출간했다. 내년 초쯤 총 12권으로 단행본을 완간할 계획이다.

[책마을] 국가대표 만화가가 30년 만에 쓴 정통 역사극, 정복자 아닌 인간 칭기즈칸 그려
그가 《식객》에서 보여준 ‘실제 자료에 기반한 창작’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는 《말무사》 집필을 위해 몽골 전문가와 함께 국내외 사료를 조사하며 공동 연구했다. 몽골 현지를 세 차례 방문하며 칭기즈칸의 탄생지 ‘다달솜’, 성장기를 보낸 ‘오논 강가’, 오늘날의 칭기즈칸을 있게 한 역사적 장소 ‘발주나 호수’ 등 주요 유적지를 꼼꼼하게 취재했다.

3~4권은 12~13세기 몽골의 젊은 두 영웅 이야기다. 3권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한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테무친의 첫 번째 전쟁이다. 작은 무리의 수장으로 행복한 삶을 살던 테무친은 아내를 메르키트에게 빼앗기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세력을 키운다. 의형제이며 당시 초원의 강자이던 ‘자무카’와 연합해 치른 메르키트와의 전쟁이 테무친의 첫 번째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얻은 자신감은 이후 테무친을 위대한 정복자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아는 정복왕 ‘칭기즈칸’은 존재하지 않았고, 세계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4권에는 ‘13익 전투’로 알려진 테무친과 자무카의 전면전을 담았다. 전술, 전략, 정치 등 모든 면에서 테무친을 압도했던 자무카가 테무친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는 전쟁 장면이 밀도 높은 그림에 담겼다.

사료를 연구분석해 만들어진 사실성 넘치는 에피소드는 작품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2~13세기 몽골인들은 유목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주 문명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작품 속에 다수 등장한다. 3권에 수록된 ‘머나먼 여행’ 에피소드는 당시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식량이 떨어지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사방이 탁 트인 끝없는 초원에서 어떻게 목적지를 찾아갔는지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4권의 ‘13익 전투’ 이후 테무친에게 귀순한 적장을 맞이하는 연회 에피소드에서는 ‘초원의 동맹’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졌는지와 함께 당시 몽골의 풍습, 귀족 내 서열 등에 대해 알 수 있다.

허 화백이 현지에서 체험한 에피소드를 코믹한 삽화 및 생생한 현장 사진으로 엮은 취재후기와 본편의 내용을 심도 있게 파고들어 장면 사이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Q&A코너 등 부록들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허 화백은 “칭기즈칸은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생을 싸운 사람이다. 기업하는 사람이든,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현대인들은 누구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산다. 칭기즈칸이 처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의 인간 경영술, 전략 전술, 포용력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얘기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