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 "결혼 석달…아내 얼굴 세 번밖에 못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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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영광 20년' 황영조, 후배 양성·자원봉사
올해는 한국 마라톤 역사에서 특별한 해다.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42·사진)이 1992년 8월9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그는 1896년 올림픽 마라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 손기정 선생은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다. 황 감독은 태극기를 달고 뛰어 민족의 한을 푼 국민 영웅이기도 했다.
영웅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2일 늦깎이 결혼을 한 그는 신혼여행 뒤 바로 강릉과 제주를 오가는 전지훈련에 들어갔다.
42.195㎞를 달리며 도로에 쏟아부었던 열정을 지금은 후배 양성에 쏟고 있다. 짧게는 오는 25일 경북 구미에서 열리는 새마을마라톤대회가, 길게는 7월 런던올림픽이 목표다.
황 감독은 21일 기자와 만나 “훈련은 고되지만 삶의 모든 것을 걸어봐도 좋을 만큼 올림픽 금메달은 가치가 있다”며 “상황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죽기살기로 뛰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케냐 에티오피아 같은 마라톤 강국의 높은 벽을 한국이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황 감독은 20년 전 자신이 금메달을 딸 때도 이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마라톤은 땀에 대해 정직한 운동”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1986년 강릉 명륜고교에 진학하며 육상계에 발을 들인 후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오더군요.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뛰다 보니 어느새 제가 세계 최정상에 서 있었습니다. 참고 견뎌내니 영광이 왔어요.” 사실 그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진짜 유산은 이런 ‘노력하는 자세’다.
영광에는 대가도 따른다.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황 감독은 선수생활을 한 뒤로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간 게 단 한 번뿐이다. 가정을 꾸린 뒤로는 훈련을 다녀도 마음이 편치 않다. “결혼해서 석 달 동안 아내 얼굴을 세 번밖에 보지 못한 새신랑이 있을까요? 오늘 서울에 올라온 것도 아내에게 알리지 못했어요. 어차피 집에 갈 수 없어 못보고 내려가야 하는데 뭐하러….”
그는 일 말고도 꼬박꼬박 챙기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봉사활동이다. 황 감독은 2009년부터 체육인 봉사활동 단체인 ‘함께하는 사람들’ 회장을 맡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등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씩 고아원 등을 찾아간다. 지난 18일에는 제주도 전지훈련 중에도 탐라장애인복지관을 찾아 장애인들에게 직접 만든 짜장면을 대접했다. 21일에는 서울 송파구 자원봉사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황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뜨겁게 응원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는 생각으로 소외계층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