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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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서 산의 무서움·매력 느껴…백두산 보고 '통일 보리라' 다짐
김현 <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hyunkim@sechanglaw.com >
김현 <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hyunkim@sechanglaw.com >
최근 대한산악연맹 한국등산학교를 수료했다. 30년 만에 암벽에 다시 도전한 것이 좋았고 낯익은 삼면체 모양 침니(굴뚝) 코스가 반가웠다. 요령은 등과 두 발을 힘껏 바위에 버티고 한 발씩 위로 올라가는 건데 바위 바깥 쪽으로 나올수록 운신의 폭이 넓어져 편하고 올라가기도 쉽다. 그런데 아래는 아득한 절벽이므로 겁이 나 본능적으로 바위 안쪽에 들어가게 되고 그러다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법정스님의 ‘내려놓아라 비워라’ 하는 말씀이 생각난다.
재수시절 소백산에서 길을 잃었다. 일행과 잠시 떨어졌다가 안개가 끼고 해가 져 미처 합류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언덕에서 떨어져 안경을 잃어버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날 산속에서 24시간을 헤맸다. 배고프고 목말라 풀도 뜯어먹고 돌도 입에 넣어봤다. 산속에서 잠을 청해봤으나 무섭기도 하고 추워 잠이 안 와 계속 걸었는데 다행히 화전민을 만나 구조됐다. 얻어먹은 감자밥이 얼마나 달던지! 돈을 모두 털어주고 영주에서 친절한 여학생에게 차비를 꿔 기차를 타고 겨우 돌아왔다. 친구들은 실종신고를 했다고 한다. 고생했지만 그때부터 산이 좋아졌고 산이 무서운 것도 알게 됐다. 1997년 민족의 성지 백두산에 올랐다. 베이징과 옌지를 거쳐 산 입구에서 지프로 한참 올라가고 또 걸었다. 드디어 천지. 그날은 운이 좋아 새파랗고 장엄한 천지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벅찬 감동을 느꼈다. 내 생애에 반드시 통일을 보고 말리라. 하산하는 길 장백폭포 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며 다시 올 것을 기약했다.
겨울에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한라산에 올랐다. 백록담도 예쁘기는 하나 백두산처럼 수량이 많지 않아 아쉽다. 한라산은 부드럽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고, 울창한 삼나무숲은 참 포근하다. 눈꽃이 활짝 피었을 때가 장관인 지리산은 웅장한 기개가 하늘을 찌른다. 남원에서 하루 자고 천왕봉에 오른 후 경남 산청으로 내려왔다. 영호남을 가로질러 넉넉하게 자리잡은 지리산이 우리 마음속 좁은 지역의식도 후련하게 씻어줬으면 좋겠다. 설악산 한계령에서 시작해 대청봉에 올랐다. 설악산은 새초롬하고 깔끔한 미인의 느낌이다. 미시령길에 접어들면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장엄하게 다가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런 때 당나라 시인 두보는 “높은 봉우리에는 솟아오르는 해가 서늘하고 첩첩 뫼에는 아득한 구름이 머물러 있네”라고 읊었으리라. 아름다운 산들을 곁에 둔 우리는 복받은 민족이다.
김현 <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hyunkim@sechang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