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부모님 내복 대신 여친 명품가방…술집서 월급 절반 날린 것보단 낫죠"
대기업 신입사원 원모씨는 첫월급을 받고도 1주일가량 친구들에게 용돈을 빌려가며 살았다. 엄청난 빚에 시달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 속 사정은 지극한 ‘효심’ 때문이었다.

“첫월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어머니, 아버지 빨간 내복부터 사야 한다. 그 전에 다른 곳에 쓰면 부정 타서 회사 다니는 내내 복이 달아나니 명심해야 한다.” 첫월급에 대한 어머니의 ‘신앙’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강도 높은 신입교육 와중에 짬을 내 마트나 백화점을 들러 봤지만, 분홍색만 눈에 띌 뿐 빨간색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마트에 전화를 걸어 빨간색을 특별 주문했으나, 그나마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헛걸음까지 친 끝에 어머니가 그토록 강조하던 빨간색 내복을 사다 드릴 수 있었다.

“그때까지 월급통장에 손을 댈 수 없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가며 살았으니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겠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소중한 ‘믿음’을 지켰드렸다는 점에서 제 맘도 편합니다.”

원씨의 경우처럼 직장인들에게 첫월급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부모님 빨간내복’의 전통은 아직도 유효하지만, 2012년 새내기들의 첫월급 활용법은 훨씬 신세대답다. 대학시절부터 벼르고 있던 명품 등산복이나 시계 등을 마련하는가 하면, 두피·각선미 등 스타일 관리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어린이를 위한 후원금 계좌를 트는 자선형, 친척 20명에게 선물을 돌리는 후덕한 인심도 볼 수 있다. 물론 ‘오늘은 내가 쏜다’며 거하게 한턱 술값으로 쓰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월급봉투는 얇아도 밤은 길다(?)

대기업에 입사한 문모씨는 부서 배치 첫날 첫월급의 절반을 유흥비로 날렸다. 들뜬 기분에 회사 선배들과 1차, 2차를 거쳐 3차로 ‘단란한 술집’까지 쭉 내달렸다. 다음날 출근해 컴퓨터를 켜보니 선배의 메일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원 엔빵(전체 비용을 사람 수(n)로 나눠 계산) 오늘까지 송금 바람. 계좌번호 ***.’ 문씨는 첫월급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선물을 챙겨줬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발그레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취직이 힘들어질수록 먼저 취직한 이들은 주위 ‘백수’들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에 입사한 노모씨는 중·고교 친구들과 대학 동기, 동아리 회원들에게 돌아가며 ‘취업 턱’을 냈다. 이후에도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들과 만나면 자랑스럽게 나서서 술값 계산을 자처했다. 자취방 월셋날이 다가왔을 때 노씨에게 남은 돈은 한푼도 없었다. 취직한 아들의 첫 월급 선물을 내심 기대하던 노씨의 부모는 월세를 부쳐주면서 가슴을 쳤다고.

◆첫월급날은 ‘지름신’이 강림하는 날

신세대 신입사원들은 첫월급을 받으면 평소 벼르던 아이템에 아낌없이 투자하곤 한다. 서른이 넘는 늦은 나이에 홍보대행사에 취직한 차모씨는 첫월급을 받자마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할부로 샀다. “좀 무리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취직은 늦은 대신 차가 있으면 결혼은 더 빨리할 수 있지 않겠어요.”

대형 증권사에 입사한 김모씨는 첫월급날 대학시절부터 꿈꾸던 해외 유명 등산복 브랜드의 60만원짜리 바람막이를 샀다. 백화점 신입사원 신모씨는 평소 눈여겨봤던 100만원짜리 시계에 첫월급을 투자했다. 물론 자금사정을 감안해 3개월 할부로 했다.

외국계 광고대행사에 입사한 최모씨는 지름신이 제대로 강림한 케이스. 첫월급은 200만원 남짓이었지만, 크리스찬디올 프라다 등의 명품을 사대는 통에 신용카드 한도 500만원을 초과할 지경이 됐다. “좀 많이 쓰긴 했지요. 그래도 부모님 용돈받고 사느라 못 샀던 것들을 갖게 돼 솔직히 너무 기뻐요.”

2년간의 백수 생활을 접고 화학업체에 입사한 장모씨는 첫월급을 고스란히 여친에게 헌납했다. 백수시절 데이트 비용을 기꺼이 부담했던 그녀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백화점에서 그녀가 고른 프라다 가방은 첫월급을 살짝 밑도는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이었다. “부모님은 어쨌든 절 버리지 않겠지만, 여친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눈감고 질렀습니다.”

◆내몸을 위해 아낌없이 쓰련다

지난해 3월 창원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업한 전모씨는 입사 첫달부터 3개월간 월급을 고스란히 저축했다. 다른 이들보다 일찍 시작된 탈모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모발 이식비 400만원을 모아 병원을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거사를 미룰 수 밖에 없게 됐다. 너무 이른 시기에 앞머리에 모발이식을 했다가 탈모가 계속 진행되면 뒷머리가 빠지고 이식한 앞머리만 남아 더듬이처럼 될 수 있다는 의사의 충고 때문이다. “이 돈은 절대 건드리지 않도록 정기예금에 넣어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요.”

은행에 들어간 이모씨가 첫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성형외과였다. 평소 컴플렉스였던 ‘다리알’ 을 제거하기 위해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 10주간의 연수기간 동안 받은 200만원의 첫월급 중 절반이 들어갔다. “다리알 제거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필생의 과제’예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아 만족해요.”

◆첫월급날 “기부천사 됐어요”

전자업체에 취직한 황모씨는 첫 월급날을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평소 사회사업가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그는 첫 월급날 에티오피아의 13살 어린 소녀에게 매달 2만원씩을 보내주는 후원 신청을 했다. “그 애한테 에티오피아 글로 쓰여진 그림 편지를 받았는데 내 조그마한 마음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알고 정말 기뻤어요.”

첫월급을 받고 부모, 형제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일가 친척 모두에게 선물을 돌리는 사례는 흔치 않다. 대기업 신입사원 안모씨는 첫월급 중 100만원을 들여 할머니, 외할아버지·외할머니, 고모·고모부, 외삼촌, 이모 등 20명의 친척에게 5만원짜리 속옷을 일일이 선물했다. 물론 그는 남는 돈이 거의 없어 양복 한벌 못 샀지만, 평소 진빚을 다 갚은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고.

첫월급은 재테크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도 된다. 증권사 신입사원 윤모씨는 “주식을 배워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로 첫월급의 절반을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 원금은 작년 하반기 증시 하락기에 반토막이 났다. “그 정도 투자금에 주식 투자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배웠으니, 수업료를 적게 낸 셈이죠.”

◆월급 받아도 배고픈 신입들

건설사에 다니는 박모씨는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던 학자금 대출을 첫월급으로 갚았다. 대학시절 학자금 대출을 통해 추가학기 등록금을 냈다. 전자회사에 취업한 김모씨도 첫월급은 부채상환에 쓸 예정이다. 학자금 대출은 물론, 취업 준비를 하며 선배와 친구들에게 생활비 용도로 빌린 돈이 500만원 가까이 된다. 그는 “다른 대학 동기들에 비해 월급이 많지만 빚 갚느라 앞으로 1년간 저축은 꿈도 못 꿀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경목/강경민/김동현/은정진/고은이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