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누구를 위한 '삼성 흔들기'인가
삼성그룹 흔들기에 창업주 장남까지 가세했다. 선거판 치장용 ‘대기업 펀치’ 개발에 골몰하는 정치권에 힘을 실을 자중지란이 돌출한 것이다. 삼성생명 주식 저가매입에 대한 증여세 논란이 제기된 10여년 전부터 선대 회장 차명주식 존재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삼성특검에서도 차명주식이 핵심 쟁점이었는데 상속권자인 장남은 그때는 몰랐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민법은 상속인의 동등한 재산분배가 원칙이다. 기업 상속의 경우 주식을 똑같이 배분해서는 경영권 상속이 어렵기 때문에 경영능력이 검증된 자녀에게 명의신탁을 통해 몰아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작고한 지 25년이나 됐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성장한 시점에 형제간 소송의 진의가 의문이다.

삼성생명 주식 일부가 삼성자동차 경영책임과 관련해 채권은행에 넘어가면서 주식관리가 복잡해졌다. 주주 은행의 요구에 따라 상당한 현금배당이 이뤄졌고 차명주식에 귀속된 배당수입을 관리하기 위한 차명예금도 필요해졌다. 구조조정본부 임원이었던 김용철 변호사 명의로도 차명계좌를 개설했던 것이 폭로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삼성중공업이 허위로 선박건조를 조작해 이익을 부풀려 비자금을 만들었고 이를 구조본 간부 명의로 관리했다는 것이 폭로 요지였다. 원래 비자금 조성은 수입금액을 빼돌리든지 가공경비를 계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익감소가 수반되게 마련이다. 가공매출로 이익을 늘리면서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회계구조상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한국회계학회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회계적 허구임을 신문 칼럼과 방송을 통해 강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으로 주재했던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필자는 가공매출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회계적 허구로 국가 투명성이 추락하는 사태를 정부가 나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계를 잘 알고 있는 명문 상고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답변에는 특유의 솔직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경제부총리와 금융감독위원장을 비롯한 경제부처 수장들이 모두 배석했으나 미묘한 사안이라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삼성특검 결과 차명계좌가 드러났고 분식회계 주장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정치의 해’를 맞아 출자총액과 순환출자 등 대기업 규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순환출자는 기본적으로 자본투자에 참여한 주주 간의 문제다. 삼성 대주주 일가 지분이 1%에 지나지 않는다면 99%의 주주들이 경영을 위임한 셈이다. 이들 주주가 이탈하지 않고 계속 투자하는 것은 수익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삼성 흔들기’의 어지러운 국면에서도 삼성전자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삼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라는 비난에 대한 주식시장 반응은 거꾸로다. 시민단체의 삼성 비난을 접하고 주식을 처분했던 투자자는 땅을 치는데 시민단체 간부들은 정치권에서 부상하고 대학에서도 모금 능력을 자랑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순환출자 규제가 강화되면 삼성 계열사 일부는 분리돼야 한다. 삼성 프리미엄을 포기해야 하는 분리대상 계열사 주주와 임직원 반발을 어떻게 잠재울지 의문이다. 르노삼성이 삼성그룹을 떠난 이후에도 거액의 브랜드 사용료를 내면서 계속 삼성마크를 고수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나친 삼성 흔들기는 국제시장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애플 등 경쟁사를 돕는 자해행위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삼성그룹도 사장단과 임원의 합동 모임을 자제하고 개별기업 자율경영을 확대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와 같이 경쟁력 저하를 유발하는 내부거래도 정리해야 한다. 우리 대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제적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