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성공한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해야 따라잡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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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재벌세' 도입 반대의견 내 "포퓰리즘 정책은 절대 안돼"
핸드백 사업 본궤도에 오르면 화장품·향수도 만들 계획
'재벌세' 도입 반대의견 내 "포퓰리즘 정책은 절대 안돼"
핸드백 사업 본궤도에 오르면 화장품·향수도 만들 계획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57)은 달변이다. 상대를 배려하며 대화를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30~40분짜리 연설도 원고 없이 막힘이 없다. 그가 창업한 로만손도 잘나가고 있다. 1988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한 시계 제조업체 로만손은 액세서리 사업까지 진출해 이제 연매출 1000억원을 웃도는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에는 중기중앙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사업도 대외활동도 모두 술술 풀리고 있다. 비결이 뭘까. 노력과 운만으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전통 참복요리집 ‘현복집’에서 김 회장과 자리를 같이했다. 그는 “저 대신 지금 로만손을 꾸려가고 있는 막내동생 김기석 사장이 소개해서 3년 전부터 출입하고 있는 단골집”이라며 “참복 튀김과 복어쌈, 복화로구이가 기가 막히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주당(?)으로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권했다. 그가 새로 개발했다는 일명 ‘K-biz(중기중앙회 영문 약어) 칵테일’이다. 초정리 탄산수에 전통주인 ‘화요’(41도)를 붓고, 제주 귤즙을 짜넣어 만든 혼합주다.
김 회장은 “내가 전에는 전화번호부가 필요없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는데 요새는 술을 많이 해서인지 영 감이 떨어진다”며 “그러나 K-biz 칵테일을 마시면 아침에 큰 문제가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첫 메뉴로 뜨끈한 참복튀김이 나왔다. “자자 어서 드셔 보세요.” 김 회장의 권유에 아삭한 튀김을 씹으니 고소한 닭고기 맛이 났다. 술도 한잔 걸쳤겠다, 참복튀김도 먹었겠다, 얘기를 돌릴 필요가 없었다. 바로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선친이 언론인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친이 덕자 희자를 쓰시는데 신아일보 충청북도 주재기자를 하셨죠. 학생 때는 충북 육상대표로 전국대회 우승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저희도 어렸을 때는 신문을 돌렸어요. 5남매가 전부 새벽마다 자전거 타고 신문배달을 했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스케이트를 사서 타기도 했죠.”
▶집안이 풍족한 편이었군요.
“할아버님이 시골에서 미곡상을 하셨어요. 도라꾸(트럭의 일본식 발음)로 충주에서 쌀을 사서 서울 뚝섬으로 운반해 파셨죠. 땅도 꽤 많았어요. 당시 부모님이 연필을 한 다스씩 사줘서 항상 긴 연필을 썼는데 그땐 그런 아이들이 드물었어요.”
역시 핏줄이었다. 사업가 할아버지에, 언론인 아버지라.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조상의 덕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조모와 모친 얘기, 학창시절 얘기를 더 들어보면 분명 재미있는 얘기들이 고구마 덩굴처럼 줄줄 나올 듯 싶었다. 막 집안 얘기를 더 물어 보려는데 김 회장이 말을 막았다.
“자자! 집안 얘기는 그만해요. 집안 잘 살았다고 얘기해봐야 좋은 소리 못듣고. 그보다 제 사업 얘기나 중소기업 현안 얘기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마침 복어쌈(부쓰사시)이 나왔다. 복어를 두껍게 회를 떠서 미나리에 싸 소스에 찍어 먹는다. 복어회는 보통의 그것과 비슷했지만 소스가 특이했다. 천일염을 숙성시켜 만든 간장에 숙성 가다랑어 포와 자연산 표고버섯을 얹고 유자즙으로 신맛을 낸 천연 조미료 소스였다. 한 입 넣으니 쫄깃한 복어의 싱싱한 맛과 알싸한 미나리, 시큼 달짝지근한 소스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사업 얘기로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회장이 끝까지 칵테일이라고 주장하는 폭탄주가 수차례 돈 후여서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
▶사업이 처음부터 잘 됐나요.
“업 앤드 다운(up and down)이 심했어요. 1970년대 후반 사우디아라비아로 갔어요. 어머니가 폐암으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었죠. 동생들 공부시키고, 돈도 벌어야겠기에…. 사업가 꿈을 꾼 것도 그때입니다. 귀국 후 지인의 권유로 ‘솔로몬시계공업사’라는 작은 회사를 차렸는데 잘됐어요. 그러다 영화를 제작하던 친척에게 보증을 섰다가 다 날렸습니다. 그때 거래처 사장 세 분이 5000만원을 마련해줘 그걸로 다시 일어섰어요. 1988년 일인데 1년 만에 빚을 다 갚았어요.”
그 후 로만손은 순풍을 탔다. 처음엔 일본 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하다 중동에 진출, ‘커팅 글라스’ 기술로 히트를 쳤다. 중동에 진출할 당시 “두바이에 100번 정도 갔다”는 게 김 회장의 회고다. 시계를 500개 정도 담은 30~40㎏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다 보니 오른팔이 늘어나 왼팔보다 길어졌다는 것은 시계업계에서 전설로 남아 있다.
짝퉁 시계의 범람, 걸프전 발발 등 수많은 난제가 있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정면돌파했다. 청산유수 같은 그의 얘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즉석 화로 복소금구이가 나왔다. 그가 짭조름하고 담백한 복소금구이를 집었다.
▶2003년 시작한 액세서리 사업도 순조로운 것 같습니다.
“작년 로만손 매출이 1050억원인데 목걸이, 귀걸이, 가방 등 액세서리 쪽이 600억원쯤 돼요. 목걸이 등 주얼리를 미국 쪽에 가져갔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뉴욕 센트럴파크 앞에 있는 플라자호텔 1층에 휴대폰 메이커 ‘버튜(vertu)’ 매장을 밀어내고 들어갔어요. 매달 5만~10만달러어치를 팔고 있어요. 1층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성공이죠.”
그는 역시 사업가였다. 현안이 끊이지 않는 중기중앙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앞으로의 사업 구상까지 빈틈이 없었다. “로만손은 이제 종합브랜드 기업이 됐습니다. 핸드백 사업만 본궤도에 오르면 곧바로 화장품이나 향수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할 것입니다.”
▶시계면 시계, 액세서리면 액세서리. 성공 비결이 뭔가요.
“허허 그거는 영업비밀인데. 우선 저는 절대 남을 따라 하지 않았어요. 남들이 내수시장을 두고 박터지게 경쟁할 때 저는 글로벌 시장을 뚫었고, 남들이 외국 시계 베낄 때 커팅 글래스 기술, 이온 도금 등 새로운 기술로 시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거래처는 절대 안 바꿉니다. 히트 상품을 내면 외국 바이어들이 몰려듭니다. 그래도 ‘1국 1바이어’ 원칙을 고수했어요. ‘한 번 맺으면 그대로 간다’ 그게 제 영업 방침입니다. 얼마전 둘째 딸아이 결혼식 때는 20년 동안 거래해온 터키 바이어가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어요. 나머지는 노력입니다.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잠을 덜 자고 노력하든지, 더 머리가 좋든가 해야 합니다. 책에서 나오는 성공전략은 없어요. 성공한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해야 성공할 수 있죠.”
"시장원리에 맡기면 '3不 문제'도 저절로 풀려"
김 회장은 지난해 재선에 성공, 5년째 중기중앙회를 이끌고 있다. 그 사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작업이 이뤄졌고, 골목상권 유지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도 개정됐다. 논란을 벌였던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 시행에다 가업상속 공제액이 1억원에서 300억원까지 늘었다. 적잖은 난제들이 그의 리더십 아래 술술 풀렸다.
▶각종 경제정책에서 대기업이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대기업들이 자초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중기 적합업종 선정이나 초과이익 공유제 등은 모두 민간에서 자율로 타협을 통해 도입하도록 돼 있습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그동안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얘기해왔습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초과이익 공유제를 내놨을 때 찬성하지 않았고, ‘재벌세’ 얘기가 나왔을 때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조금 민감하거나 불리하면 회의에 불참합니다. ”
▶그래도 최근 정치권에서 나오는 정책들에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적인 요소도 많지 않나요.
“저는 회장을 맡고 나서 한번도 정치권이나 정부에 중소기업을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원칙대로 해 달라. 이게 다였습니다. 자금 지원보다는 거래의 불공정, 제도의 불합리, 시장의 불균형 이른바 ‘3불’ 문제 있잖습니까. 이게 해결되면 됩니다.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만 해도 그래요. 정치권에서는 금융위원회에 수수료율을 정하는 권한을 준다는데 이렇게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정책은 옳지 않습니다. ”
마지막 메뉴로 복맑은탕이 나왔다. 뚝배기 대신 종이로 만든 그릇에 불을 때게 돼 있다. 종이를 받침으로 쓰면 국물이 졸지 않고 시원하다는 게 주인장의 설명이다. 역시 마지막은 가볍게 마무리하는 게 좋을 터.
▶따님만 두 분 두셨는데 가업승계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십니까.
“첫째가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어요. 2시간 동안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는데 완벽하게 치고 세 번 연속 앙코르를 받았죠. 그 애는 그 길을 갈 거고요. 둘째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 지금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 과장으로 있습니다. 본인도 생각이 있겠지만 꼭 아이들이 가업을 승계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회사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거죠. 회사를 잘 경영하고 오래도록 지속시킬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거의 매일 술자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5시반이면 기상합니다. 그리고 운동하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지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비결이면 비결이랄까요.”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K-biz 칵테일’처럼 시원하고 깔끔했다.
김기문 회장의 단골집 현복집
참복사시미·튀김·구이 등 유명한 복 전문점
현복집은 참복요리 전문점이다. 일본 종합상사 도멘 서울지사에서 13년간 근무하다 복 요리에 빠져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신재욱 대표(48)가 2003년 서울 논현동에 설립,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서 9년째 영업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참복사시미 참복쌈(부쓰사시) 복껍질무침(유비키) 참복튀김 참복구이 등 10개. 요리마다 깊은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만만찮다. 참복사시미낫토 한 접시가 6000원으로 가장 싸다. 참복튀김은 1인분에 3만원, 참복구이는 5만원이다. 제주산 참복 한 마리를 즉석에서 수육으로 만들어주는 특수육은 12만원. 코스요리는 8만원, 12만원, 15만원짜리가 있다. 참복껍질 참복사시미 참복튀김 참복지리 죽 5가지가 8만원이고 여기에 참복 숯불구이와 참복불고기 하나를 추가하면 12만원. 10가지 메뉴를 모두 먹는 15만원 코스도 있다. 점심에는 8만원 코스요리를 반값에 제공한다. (02)511-6888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