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150% 이상 수두룩…위험 수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고려하지 않고 독자적인 재무지표로만 신용평가를 할 경우 상당수 공기업이 투기등급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기업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지면 재원 조달을 위한 공사채 발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공사채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발행 금리가 높아져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현대증권은 신용등급 'AA' 이상의 26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일반기업 신용평가 방법을 적용한 결과 A등급이 4개, BBB등급 10개, BB등급 4개, B등급 이하는 8개로 평가됐다고 16일 밝혔다.

정부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면 BBB 이상의 투자적격등급은 절반 수준인 14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12개 공기업은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증권이 투기등급으로 분류한 공기업은 경상남도개발공사, 광주광역시도시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한국가스공사(이상 BB등급 4개사), 강원도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 대구도시공사, 대한석탄공사, 부산교통공사, 전남개발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철도공사(이상 B등급 8개사) 등이다.

동양증권도 분석대상 22개 공기업 가운데 지난 2010년 기준 부채비율이 150%가 넘는 공기업은 모두 10개사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평가 분류 기준 투기등급에 속하는 BB등급 회사들의 최근 5년간 부채비율 중앙값은 144.2%다.

부채비율이 150%가 넘는 공기업은 투기등급 기업 수준의 부채비율을 가진 셈이다.

공기업별로 보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559.3%, 한국가스공사가 358.6%, 한국농어촌공사가 274.3% 등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축에 속했다.

금융당국은 정부나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개별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만을 평가해 신용등급을 매기는 '독자신용등급(Stand-alone rating)'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 11월 신용평가시장 제도개선 태스크포스를 꾸려 4개월 넘게 제도 도입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시장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 자리도 마련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공기업의 타격이 특히 커질 수 있다.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공기업이 상당수지만 그동안 정부 지원 가능성이 고려돼 우량등급으로 분류돼 왔기 때문이다.

국내 신평사 관계자는 "공기업들은 그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사업을 수행하면서 빚이 많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독자신용등급이 도입되면 대기업 계열보다 공기업의 어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동양증권 박형민 연구원은 "분석 담당 공기업 23곳 중에서 10곳의 부채비율은 100%가 넘고 500% 이상인 공기업도 3곳이나 된다.

독자신용등급은 재무지표만 보고 평가하겠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공기업은 재무 건전성이 좋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지방공기업의 상황은 더 안 좋다.

현대증권은 강원도개발공사와 경상북도개발공사, 전남개발공사, 대구도시공사 등 지방공기업의 독자평가등급이 B등급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 지방공기업은 현재 회사채 시장 등에서 모두 AA등급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다.

현대증권 방종욱 신용분석 연구원은 "향후 독자신용등급이 도입되면 실제 등급과 괴리가 큰 공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스프레드(금리 차이) 확대의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속적으로 재무지표가 악화하는 지방 공기업들은 재무건전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스프레드 확대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지방 공기업은 서울시 산하 이외에는 대부분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

특히 부동산 시장 침체의 영향을 받는 지방개발공사가 독자평가를 받게 되면 타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독자등급제가 도입돼 공기업의 평가가 악화하더라도 실제 자금조달 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박형민 연구원은 "공기업은 원래 정부 지원 가능성이 핵심이고 정부 일부로 보는 게 맞다.

독자평가 결과가 공사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창헌 이 율 기자 chhan@yna.co.kr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