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로 年 100弗도 못벌던 시골…수로 건설 후 수입 6000弗 '껑충'
“이 손을 보세요. 1년 내내 농사를 짓다 보니 굳은살이 가득 박혔지만 행복합니다.”

캄보디아 남부에 있는 바테이 마을에서 만난 농부 막 촌 씨(62·사진)는 양 손바닥을 내밀며 이렇게 웃었다. “예전에는 농사로 100달러를 버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수로건설 이후 소득이 6000달러로 늘었다.”

우리나라 무상원조 집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이 지역에 지어준 13.6㎞ 길이의 제방과 관개수로 덕에 이모작이 가능해졌기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가 주목받고 있다. 원조를 받던 한국은 지난해 부산에서 세계 개발원조총회를 주최하며 ODA 관련 국제사회의 논의를 주도할 정도로 이젠 지원국의 중심에 우뚝 섰다. 한국이 저개발국에 대한 개발원조를 시작한 지 21년째. 올해는 ODA에 1조80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밑도는 수준이지만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선진국과 저개발국 모두가 주목하는 나라로 떠올랐다.

124개국에 파견된 8926명의 KOICA 봉사단원은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한국의 발전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이들은 국격을 높이고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 전도사들이다. ODA는 국격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박대원 KOICA 이사장은 “우리의 원조로 소득이 늘어난 개도국 국민들이 한국 제품의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은 7회에 걸쳐 아시아와 중동, 중남미 지역에서 경제성장의 희망을 심는 땀방울의 현장을 매주 한 차례 소개한다.
농사로 年 100弗도 못벌던 시골…수로 건설 후 수입 6000弗 '껑충'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1시간40분가량 달려 도착한 캄퐁참주의 바테이 마을. 농민수리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막 촌 씨는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거친 손을 내밀며 연신 반가움을 표했다. 그의 안내로 붉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20여분간 승합차로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주민들이 간이펌프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든 작은 웅덩이가 파여 있어 길 곳곳에서 승합차 바퀴가 빠지기도 했다.

험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지원으로 조성된 제방이었다. 흙으로 2m 넘게 쌓아올린 둑 뒤에는 여의도 면적(840만㎡)의 4.7배가량 되는 4000만㎡의 논이 펼쳐져 있었다. 건기의 한복판인 2월 중순, 논에는 벼가 푸른 빛을 내며 강렬한 태양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막 촌 씨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의 표정에는 경이로움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작년에는 이 땅에서 아무것도 못 자랐어요. 우기에는 물에 잠기고 건기에는 땅이 말라 그저 버려둔 땅이었어요. 2월에 이렇게 벼가 자라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막 촌 씨는 자신의 논을 가리키며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캄보디아는 전체 인구의 84%인 1300만명이 농촌에 사는 전형적인 농업국가다. 1년 내내 20도를 웃도는 기온은 벼농사에 더없이 적합하지만 벼가 자라는 땅은 일부분이다. 농업용수 때문이다. 우기 땐 논밭은 물론 집과 학교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홍수에 시달리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11월부터 5월까지 건기에는 땅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에 시달린다.

관개시설은 20년간 지속된 내전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됐다. 때문에 농사는 우기에도 물에 잠기지 않는 일부 고지대에서만 가능했다. 일모작하기도 어려웠다.

KOICA가 450만달러를 들여 이 지역에 홍수를 조절하기 위한 제방 건설에 착수한 것은 2007년 7월. 캄보디아 정부의 요청 이후 1년 만이었다. 2년에 걸친 제방 건설로 홍수방지 장치를 마련한 뒤 후속작업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관개수로를 건설했다. 1, 2차에 걸친 사업이 마무리된 뒤 처음 돌아온 건기, 주민들은 이 땅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적같다”고 입을 모았다.

흙을 높이 쌓아올리고 곳곳에 물길을 낸, 단순해 보이는 시설이지만 바테이 주민들에게 가져온 변화는 컸다. 지난해 9월 동남아지역을 덮친 홍수에 캄보디아도 큰 피해를 입었다. 바테이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제방 덕분에 올해 우기에는 바테이주 20개 마을, 5650가구가 침수피해를 면했다.

오움 위볼 바테이주 수자원기상국장은 “예전에는 우기가 되면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농사는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올해는 제방을 쌓은 덕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며 “쌀 수확량이 미미했는데 이젠 한국의 도움 덕분에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수로와 제방은 캄보디아 정부와 바테이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주민 52명은 농민수리조합을 결성, 스스로 운영 비용을 거둬 수로를 관리·보수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조합을 구성, 수로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프로그램도 KOICA 지원사항 중 하나다.

수로 건설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직접 수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입이 늘었는지 물어보자 주민들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서로 앞다퉈 자신의 이야기를 내놓아 통역을 맡은 캄보디아 KOICA 현지인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막 촌 씨의 지난해 연간 수입은 6000달러. 캄보디아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이 4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고소득이다. 프놈펜 시내에서 외국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의 월급을 웃도는 수준이다. 그는 “저보다 더 많이 번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또 “예전에는 전기를 사용할 돈도, 모터 돌릴 기름을 살 돈도 없었지만 이제는 도시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농민수리조합부회장인 오즈 워어 씨는 “우리 동네에 희망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도시나 한국, 일본 등으로 일하러 나갔다. 농사로는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지어준 수로로 농사를 내내 지을 수 있어 사람들이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합원 후어 힘씨는 1년 내내 일을 하면 몸이 고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돈을 벌 수 있고 이걸로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고 했다.

KOICA의 바테이 지역 지원은 관개수로 단일사업으로는 첫 시도다. 신명섭 KOICA 캄보디아 사무소 부소장은 “우리나라의 원조 규모는 중국, 일본 등에 비하면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새마을 운동 등 개발경험이 풍부한 장점을 살려 농촌개발에 중점을 맞춰 추진하고 있다”며 “농업생산성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파급력 있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캄보디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테이(캄보디아)=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