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한번만 도와줘" 불법 베팅사이트 시장 13조원
프로축구에서 드러난 프로스포츠 경기 조작의 그림자가 배구를 거쳐 최고 인기종목인 야구까지 뒤덮고 있다. 남자 프로배구에 이어 여자 프로배구에서도 경기 조작 사실이 있었던 사실이 16일 확인되면서 경기 조작이 국내 프로스포츠 전반에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보다 정을 앞세운 포섭

"우리 사이에…한번만 도와줘" 불법 베팅사이트 시장 13조원
선수들의 경기조작은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경기조작의 시발점인 불법 베팅사이트를 통해 베팅 집단과 선수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브로커들이다. 프로야구 각 구단들이 파악한 경로는 선수들의 지인을 통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10여년간 운동만 하면서 끈끈하게 맺은 인간관계를 이용해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것. 선수들이 오랫동안 운동에만 집중하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점도 노렸다.

브로커들은 처음부터 직접 선수들과 접촉하지는 않는다. 목표로 삼은 선수와 친한 지인이나 경기를 함께했던 선·후배, 동기들을 포섭한다. 이 과정에서는 ‘사례’에 대한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일면식도 없는 브로커가 직접 돈을 들고 접근할 경우 선수들이 거절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정(情)을 통해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브로커들은 선발투수나 톱타자들을 섭외하는 데 집중했다. 가장 조작하기 쉬운 것이 ‘첫 볼넷’ ‘초구 파울’ 등이기 때문이다. 신인 선수들이라면 볼넷 하나 내주는 것이 경기 초반 1회라면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승부에 직결되지 않고 사소한 플레이 하나이니 도와달라”는 부탁에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브로커는 수락하는 선수가 있을 때 등장해 금액을 제시한다. A급 투수에게는 수천만원을 제시하기도 한다.

◆불법거래 규모 최고 13조원

경기 조작의 진원지인 불법 베팅 사이트들은 프로스포츠 산업의 성장과 함께 최근 3~4년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들 사이트는 베팅 규모가 자유롭고 항목도 다양한데다 배당률도 높아 ‘한탕’을 노리는 스포츠팬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리 감독하는 스포츠토토는 베팅액을 10만원으로 한정하고 베팅 항목도 제한했다. 스포츠토토에 신고된 국내 불법 베팅 사이트는 2007년 40건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9년 5390건으로 늘었고 작년엔 1만3750건으로 급증했다.

사행성감독통합위원회와 형사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이들 사이트의 연간 거래 규모는 최고 13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드러난 사이트는 일부분이어서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경기 조작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으로 불법 사이트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원천봉쇄는 사실상 어렵다.

불법 베팅 사이트 단속은 다단계로 이뤄지고 있다. 스포츠토토가 신고를 받으면 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보고하고 여기서 심의를 통해 접속차단을 결정한다. 이후 해당서버가 사이트를 차단하는 데까지 많게는 45~60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불법 사이트에서 베팅은 신고 이후에도 계속 이뤄진다.

장인종 스포츠토토 감사팀장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관계기관을 통합해서 단속할 수 있는 전담 기구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불법 사이트 운용자나 경기 조작 가담 선수 외에 사이트 이용자도 처벌된다. 정부는 지난해 프로축구 경기조작 사건 발생 후 처벌 범위를 이용자까지로 확대했다.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이 발표되면 불법 베팅 사이트 이용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은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경기조작이 스포츠의 판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경기 조작을 없앨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