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하이닉스 첫 출근…"책임지고 성공시키겠다"
“책임지고 하이닉스를 성공시키겠다.”

14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하이닉스반도체 서울사무소에 도착한 최태원 SK 회장은 “첫 출근”이라며 웃었다. 오랜만에 보여준 밝은 표정이었다.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추대되자 “경영 최전선에서 발로 직접 뛰겠다”며 책임경영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최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10여년간 주인없이 ‘독자생존’의 길을 걸어온 하이닉스와 SK가 만들어 갈 새 도전이 주목받는 이유다.

◆‘가시밭길’ 인수과정

하이닉스 인수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지난해 7월8일 SK텔레콤이 인수의사를 전격 발표하자 증권가에선 “시너지가 없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SK텔레콤의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SK텔레콤의 주가는 지난해 8월 초 10년 만에 최저 수준인 13만원대 초반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하이닉스 인수를 확정지을 무렵인 지난해 11월엔 최 회장의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로 혼선이 불거졌다. 인수를 포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증시에 나돌았다. 지난 13일 열린 하이닉스 이사회에선 최 회장의 사내 이사 선임을 놓고 표대결까지 벌여야 했다.

최 회장은 끊임없는 논란을 정면 돌파하며 마침내 하이닉스를 끌어안았다. 그는 이사 선임 반대 목소리에 대해 “모두 하이닉스에 대해 걱정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세 번째 기회’를 잡아라

SK그룹은 두 번의 M&A(인수·합병)로 주력 사업의 체질을 바꾸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주)선경 시절이던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을 인수하며 한 단계 도약했고 1993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사들여 재계 4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국내 시장 중심의 사업구조는 언제나 딜레마였다. 2000년 중반 들어 내수 시장은 정체하고 정부 규제가 더해지며 성장이 한계에 달한 때문이다. 그 때 나온 매물이 하이닉스다.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 기업으로 매출 9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곳. 최 회장은 과감하게 세 번째 도전을 결심했다. 내수산업 위주로 짜인 그룹의 사업 구조를 바꿀 기회를 움켜쥐기로 했다. 논란을 무릅쓰고 직접 대표이사 회장을 맡은 것은 하이닉스를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키우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읽힌다.

최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에 추대된 뒤 “하이닉스를 세계 반도체 초우량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달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이겠다”며 “SK의 경영 역량과 개인적 글로벌 네트워크 등을 총동원해 경영 최전선에서 발로 직접 뛰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기간 사업을 수행하는 하이닉스는 SK만의 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기업인 만큼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이사진에 당부했다.

하이닉스는 이날 이사회에서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을 계속 맡게 됐다. SK텔레콤은 이날 하이닉스 주식인수 대금 납입을 완료하고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총 인수대금은 3조3747억원이며 지분율은 21.05%다.

◆ 하이닉스와 최 회장의 과제

남은 과제는 하이닉스의 조기 정상화다. 그동안 투자를 못해 ‘악으로 깡으로’ 2위를 수성했던 하이닉스를 초우량 기업으로 바꿔야 한다.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하이닉스를 방문해 “앞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사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이 적기에 내려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의 올해 투자액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난 4조2000억원. 이날 SK텔레콤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2조3426억원을 지원했다. 해외 경쟁사가 오랜 적자로 투자를 축소하는 상황 속에서 투자 여력을 크게 강화했다.

투자는 D램보다 낸드플래시에 집중한다. 모바일 기기 확산으로 성장하고 있는 낸드플래시는 시장 2위인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낮다. 그동안 욕심만 냈던 비메모리 반도체에도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다.

최 회장은 “차츰차츰 좀 더 지켜봐 달라. 한술에 배부를 수 없다. 최대한 창출할 수 있도록 투자하겠다”고 했다. 다만 횡령 혐의 등에 대한 재판 결과는 경영에 집중하려는 최 회장의 행보에 변수로 남아 있다.

한편 S&P는 이날 하이닉스의 신용등급을 ‘B+’에서 ‘BB-’로 높이고 SK텔레콤은 ‘A’에서 ‘A-’로 낮췄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