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대로라면 年 1조6000억 필요…'K-9 자주포' 400문 살 수 있는 돈
사병 월급 인상안은 2000년 이후 선거 단골메뉴다. 새누리당은 2004년 총선 공약으로 당시 3만5000원(평균)가량 되던 사병 월급을 20만원으로 올리자는 안을 내놨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 전신)과 정부는 그해 50% 가까이 올렸다.

새누리당은 사병 월급을 현재의 4배 수준(40만원)으로 올려주는 방안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현금으로 지급하는 월급 이외에 매달 30만원의 사회복귀지원금을 적립해 전역 후 630만원(21개월 기준)을 보상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여야 모두 군 복무기간 월급을 모아 대학 등록금을 부분적으로라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속내는 20대 표심을 잡기 위한 것이다.

현재 사병 월급은 1인 평균 9만4000원 정도 된다. 올해 사병 월급 책정 예산은 5258억원. 여야 공약대로라면 매년 1조6000억여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예산을 어떻게 충당할지와 한정된 국방비로 어떤 분야에 더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하느냐가 논란거리다.

국방부도 현재의 물가 등에 비춰 사병 월급이 적다는 것에 동의한다. 한 관계자는 “징병제의 폐단을 줄이고 사회 복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사병 월급 인상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방부는 사병 월급 인상이 자칫 군 전력화에 차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지금 사병 월급이 너무 적어 적정 수준으로 올려주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현재의 국방예산을 재조정해 봉급을 인상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못을 박았다.

공약대로라면 年 1조6000억 필요…'K-9 자주포' 400문 살 수 있는 돈
올해 국방예산 32조9576억원 가운데 병력 운영비가 13조4923억원을 차지하고 기술개발이나 무기 구매 등 전력증강 투자비는 9조8938억원이다. 육·해·공군은 각기 3조원가량으로 각종 무기를 구매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현재 편성된 예산에서도 장교와 사병 월급을 비롯한 경상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매년 국방비 인상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사병 월급이 대폭 오르는 만큼 국방예산을 추가로 올려주지 않는다면 전력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 확충을 위해 국방비를 해마다 삭감 항목에 올리는 마당에 사병 월급분만큼 국방예산을 더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군의 판단이다.

합참 관계자는 “사병 월급을 네 배로 인상하는 데 필요한 1조6000여억원은 북한의 포를 압도하는 성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최신형 K-9 자주포 400문(1문당 40억원)을 살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해군 관계자는 “최신예 KDXⅡ 구축함 한 척이 5000억원가량 되는데 매년 구매하기 힘든 상황에 비춰 봤을 때 기존 예산으로 사병 월급을 감당하라고 하면 전력증강에 엄청난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국가안보를 희생하면서 군인들의 인심을 얻어 정권 획득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