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시부야 스크램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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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시부야는 신주쿠, 하라주쿠와 함께 일본 도쿄의 3대 번화가로 꼽힌다. 약 10개 노선이 교차하는 시부야역은 하루 유동인구가 서울 명동의 두 배인 250만명에 이른다. 얼마 전 아이돌그룹 샤이니가 시부야에서 게릴라 이벤트를 계획했다가 대혼잡을 우려한 일본 경찰의 요청으로 시작 30분 전 급히 취소하기도 했다.
시부야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시부야 스크램블’이라는 횡단보도다. 스크램블(scramble)이란 차량을 모두 정지시키고 보행자가 어느 방향으로든 횡단할 수 있게 만든 교차로다. 1분30초마다 길을 건너는 인파의 홍수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정연함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독일 기자가 이를 보고 ‘미라클 크로싱(miracle crossing·기적의 횡단)’이라고 이름 붙여 일본에서 화제가 됐다.
녹색신호가 들어오자마자 수백명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교차로를 가로지르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어깨를 안 부딪힌다. 간혹 부딪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외국인이다. 중국인들은 “절대 불가능한 보행”이라며 경악한다고 한다. 일본인 특유의 ‘메이와쿠(迷惑·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를 피하는 문화가 만들어낸 장관인 셈이다. 이 광경을 내려다 보는 시부야 Q프론트빌딩 2층의 스타벅스는 일본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매장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시부야 스크램블의 질서는 요즘 각광받는 복잡계 이론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무수한 개체(길을 건너는 개개인)는 각자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지 못하지만, 서로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적응해 나간다. 상호 피드백을 통해 무질서 속에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국내에서 우측보행을 시행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정부는 일제 때 굳어진 좌측보행 관행을 88년 만에 깨기 위해 법까지 고치고 우측보행 사이트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혼란만 커졌다. 출퇴근길이면 사람들과 부딪힐까봐 지그재그로 걸어야 해 곤혹스럽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전 세계 167개국이 우측통행, 75개국이 좌측통행을 한다. 인구 기준 66%, 도로 기준으론 72%가 우측통행이다. 이것만으로 오랜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디 팩토(de facto·사실상의 표준)도 있고, 관습이 갖는 관성도 무시 못한다. 세상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때 오히려 잘 돌아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시부야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시부야 스크램블’이라는 횡단보도다. 스크램블(scramble)이란 차량을 모두 정지시키고 보행자가 어느 방향으로든 횡단할 수 있게 만든 교차로다. 1분30초마다 길을 건너는 인파의 홍수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정연함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독일 기자가 이를 보고 ‘미라클 크로싱(miracle crossing·기적의 횡단)’이라고 이름 붙여 일본에서 화제가 됐다.
녹색신호가 들어오자마자 수백명이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교차로를 가로지르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어깨를 안 부딪힌다. 간혹 부딪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외국인이다. 중국인들은 “절대 불가능한 보행”이라며 경악한다고 한다. 일본인 특유의 ‘메이와쿠(迷惑·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를 피하는 문화가 만들어낸 장관인 셈이다. 이 광경을 내려다 보는 시부야 Q프론트빌딩 2층의 스타벅스는 일본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매장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시부야 스크램블의 질서는 요즘 각광받는 복잡계 이론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무수한 개체(길을 건너는 개개인)는 각자의 행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지 못하지만, 서로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적응해 나간다. 상호 피드백을 통해 무질서 속에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국내에서 우측보행을 시행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정부는 일제 때 굳어진 좌측보행 관행을 88년 만에 깨기 위해 법까지 고치고 우측보행 사이트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혼란만 커졌다. 출퇴근길이면 사람들과 부딪힐까봐 지그재그로 걸어야 해 곤혹스럽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전 세계 167개국이 우측통행, 75개국이 좌측통행을 한다. 인구 기준 66%, 도로 기준으론 72%가 우측통행이다. 이것만으로 오랜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디 팩토(de facto·사실상의 표준)도 있고, 관습이 갖는 관성도 무시 못한다. 세상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때 오히려 잘 돌아간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