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함께’ 혹은 ‘같이’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대학가나 직장인이 많은 지역의 지하철역 근처를 가끔 걸어 보면 어쩌면 사람들이 그렇게 닮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여성들은 긴 머리에 딱 붙는 스키니 바지, 그리고 부츠…, 남성들은 다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양복 위에 짧은 코트를 입고 어깨에는 가방을 메고 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한결같이 짙은 색 오리털 점퍼에 몸에 붙는 청바지로 단장을 했다. 다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봐도 우리나라의 이런 행태는 유행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도 일률적이다. 혹 우리는 서로 닮은꼴을 하고 함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휴가철 공항이나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어르신들의 행차 모습을 보면 참 재밌다. 한 미용실에서 손잡고 금방 나온 듯한 스타일의 파마머리, 같은 컬러의 점퍼와 신발, 옆으로 멘 가방까지…. 지인이 동남아 휴가길에 목격한 사실인데, 어느 한 나라의 공항 입국심사관이 일렬로 여권심사를 받고자 줄을 서 있는 한국 단체관광객 심사를 거부했다고 한다.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 얘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난감했으면 그랬을까….

필자는 업무상 많은 기업을 방문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똑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사내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일하는 그 사람들은 생긴 것도 같아 보인다. 아마 생각하는 것도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글로벌 10대 기업을 목표로 하는 국내 모 기업에서 회의를 하고 나오다 로비 커피숍에서 동료들과 차를 마시는 그 회사 직원들을 보았다. 똑같이 넥타이를 매거나 회사복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복장에 편한 모습이었다. 언제부턴가 이 기업의 모습이 바뀐 것이다. 같이 나오던 미국인 동료와 기업의 문화에 대해 얘기했다. 창의성을 가장 큰 모토로 하는 애플은 직원들 복장에 아무런 규제가 없다고 한다. 여름이면 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하는 직원도 많다는 것이다. 꼭 넥타이를 매고, 똑같은 회사복을 입어야 일이 더 잘되는 것은 아닐 거다.

1980년대 중·고교생 교복을 없앴던 적이 있었다. 자율복장으로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들은 그 전 교복세대와는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훨씬 자유로운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시 중·고교생이 교복을 입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원래로 돌아간 것이겠지만 창의성이 중시되는 요즘의 시대, 사고의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아닐는지….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위해 유행에 너무 민감할 필요도, 그리고 너무 많은 규제를 만들 이유도 없을 듯하다.

이행희 <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장 leehh@corni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