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부패와 증시…국가가 썩으면 '작전株'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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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패지수 오히려 악화…원천적 방지대책 마련해야
한상춘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 과도한 행정 규제와 정치적인 영향력 등으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기업인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하는 소위 ‘지대추구형 사회(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오랫동안 각국이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선진국․개도국 가릴 것 없이 이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횟수는 더 잦아지는 듯한 분위기다. 한국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뇌물 등과 같은 비(非)경제적 요인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특히 2년 혹은 3년마다 뇌물을 주는 쪽인 기업 등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되는 BPI가 그 나라의 부패 정도를 파악하는 데 중시된다. 작년 말 발표된 BPI를 보면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13위를 차지해 2008년 조사 때에 비해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제투명성기구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하는 홍콩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의 부패지수를 보면 민간 분야에서 조사 대상 아시아 16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그레이 베커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재량권 등을 꼽았다. 관료의 질, 공공부문의 임금 수준, 정당의 자금 조달 등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 부패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해된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과 증시 발전에 뇌물이나 부패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의 기반과 인허가 등 행정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는 관료들에게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경제와 증시 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 불경제(disexternal effect)’를 초래하면서 경제성장과 증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접어들 때 뇌물과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성장이 멈추면서 증시에는 작전주가 판치고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일부 국가와 필리핀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른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진 국가들이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 진입한 당해 연도에 외환위기를 당한 것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예측기관이 중·장기적으로 선진국과 부자국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경제시스템을 꼽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7위다. 하지만 뇌물과 부정부패 사건은 연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가 연루돼 있어 일부 저소득 국민 사이에는 한풀이성 소비와 같은 위기 일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정책당국은 각종 판단지표로 볼 때 가능성이 낮은데도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이 터져나오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여러 요인 가운데 잦은 정책 변경,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한국 경제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 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는 시급히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 있어야 하고,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각종 행정규제와 조세 혜택 같은 정책들을 축소하는 동시에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하고 투명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패와 관련된 정치인과 공무원을 신상필벌(信賞必罰)해야 한다. 특히 갈수록 심화될 정당의 자금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뇌물과 부패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한상춘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