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항암제 보험처리' 운용의 묘 살려야
총선·대선 등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나라 전체가 복지 논쟁으로 한창이다. 복지는 양날의 칼이다. 세금을 적게 거두면서 복지혜택을 늘리겠다는 공약만큼 매력적이지만 허무맹랑한 것은 없다.

의료계에서도 복지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제도적 한계로 인해 적지 않은 암환자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국립암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인 80세 생존자를 기준으로 할 때,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34%다. 국민 3명 중 1명은 죽기 전에 암에 걸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암은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높은 질병이다. 통계에 따르면 사망 직전 1년간 암환자 1인당 평균 2780만원을 지출한다. 본인 부담액이 큰 이유는 고가의 항암제에 보험급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보험등재를 신청한 10개 품목의 항암제 중 신규 등재된 것은 4개 품목에 불과하다. 허가에서 급여까지 소요되는 기간도 모두 14개월 이상이었다. 보험에 등재된 항암제는 5%의 본인부담금만 내면 처방받을 수 있지만, 등재되지 않은 고가 항암제의 경우 매달 수백만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항암제 처방에도 불구하고 보험급여를 받기 힘든 이유는 신약의 비용-효과성이 급여판정에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의약품 선별등재제도’라는 것을 도입했다. 모든 신약은 경제성 평가와 협상을 거쳐 등재하도록 한 것이다.

경제성만 놓고 볼 때 고가인 항암제에는 당연히 불리한 평가다. 많은 비용을 투자해 개발한 희귀질환성 항암제의 경우 이용 환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를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식이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항암제에 보험급여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보험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존엄성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항암제의 보험등재에 대한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암환자의 생명을 보장하면서도 보험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에는 기존의 경제성 평가방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개발되는 항암제는 임상적으로 비교 가능한 약제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비용효과 분석이 불가능하다. 보통 신약은 1·2·3상의 3단계 임상시험을 거쳐 사용허가를 받는다. 항암제와 같이 시급한 경우 2상까지의 결과를 바탕으로 허가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기존 비용-효과성 평가기준에 미달해, 사용허가를 받고도 보험급여를 받지 못해 서민층 환자들에겐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기존의 경제성 평가 방식을 수정하고 사회적 평가 등의 새로운 기준을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무조건 재정적 효율성만을 따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영국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위험분담계약(risk-sharing agreement)’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입증된 신약은 신속히 등재하되, 향후 재정적으로나 약의 효과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 발생하는 위험은 제약사와 보험당국이 함께 분담하는 방식이다. 우리도 고려해볼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다.

암환자·희귀질환자 등 재정지출이 큰 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기금이나 국고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균형적인 보장이 중요한 국민건강보험의 보험재정에서 불균형한 지출을 피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암환자 수는 70만명을 넘어섰다. 복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요즘, 암 환자들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책적 논의가 치열하게 이뤄져 합리적 결과를 도출해야 할 때다.

강진형 < 가톨릭대 의대교수·종양내과 jinkang@catholic.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