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베리의 2부작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에는 질긴 불행의 상징으로 인상적인 하모니카 선율이 흐른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중에서 두 남성 주인공 돈 알바로(테너)와 돈 카를로(바리톤)의 4막 이중창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중창보다 이 선율이 포함된 서곡이 훨씬 잘 알려져 있다.

‘운명의 힘’ 서곡은 극중 선율을 자유롭게 접속곡 풍으로 인용하여 장엄하고도 비극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첫머리에 금관악기로 연주되는 장엄한 세 음에 이어 운명의 동기가 울려 퍼진다. 이어 ‘마농의 샘’에 사용된 돈 알바로와 돈 카를로의 이중창, 여주인공 레오노라(소프라노)의 기도, 레오노라와 수도원장의 이중창에 등장하는 선율들이 차례로 나타난 다음 웅장한 피날레로 마무리된다.

이런 형식을 여러 향료가 섞인 단지를 뜻하는 포푸리(potpourri)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구조적으로 직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르디의 관현악 실력과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명곡이다.

유형종 < 음악·무용칼럼니스트, 무지크바움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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