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김환기 열풍'…한달 새 2만명 몰렸다
“한국적 서정을 세련된 모더니즘으로 추구하던 수화 김환기(1913~1974)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현대 회화의 독창성을 구축했다. 그의 점화에는 서구 모더니스트들의 냉랭하고 물질뿐인 올오버 페인팅, 색면파 추상, 미니멀 아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양적 서정과 인생이 서려 있다. 1973년에 제작된 추상화 ‘10만개의 점’ 앞에 서면 울음이 복받치기도 한다.”(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의 거장-김환기’전에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개막 이후 한 달간 2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국내 미술시장의 ‘황제주’가 펼쳐놓은 ‘상상력의 보고’여서인지 단체관람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미술 전공자와 외국인 관광객, 자녀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가족 관람객도 줄을 이었다. 철학적 사고를 그림에 담아낸 김환기가 한국 현대미술 문화에 끼친 영향 때문에 전시장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갤러리 이즈의 김미정 큐레이터(32)는 “김 화백의 작품에는 단순하면서도 민족적인 화풍을 살려내려 평생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며 “달항아리와 여인, 매화, 산, 새 등 일상의 이미지들을 작은 화면 속에 정감 있게 그린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 정서가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사설학원을 운영하는 이정석 씨(52)는 “지금까지 김환기 작품 이미지를 활용, 학생들에게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강의를 해왔다”며 “김 화백 작품을 연대별로 직접 보고 나니 더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17세 쌍둥이 딸을 데리고 온 주부 한창은 씨(52·서울 하왕십리동)는 “아이들이 김 화백의 작품을 사색적이고 특이하다며 재미있어 한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지하 1층에 전시된 1971년작 점화 ‘우주 05-IV-71 #200’(1971) 앞이다. 정사각형의 화면을 수직 이등분해 각각의 면에 동심원을 이루도록 점 면을 배치한 이 작품은 관람객이 가장 선호하는 그림으로도 뽑혔다. 제목에서도 연상되듯이 거대한 캔버스를 메운 점들이 천체의 움직임처럼 두 동심원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생 김여정 씨(24·서울 논현동)는 “이 작품 앞에 서 있으면 마치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며 “입체처럼 파동하는 수만 개의 점들이 모여 우주공간의 숭고미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에 나오는 시구를 제목으로 붙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년)라는 작품 앞에도 관람객이 북적인다. 김환기는 뉴욕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푸른색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으로 1970년 한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달빛이 비치는 마당 한가운데 항아리를 놓아두고 그린 ‘산월’, 부산 피난 시절 제작된 ‘피난열차’,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린 ‘10만개의 점’, 1958년작 ‘사슴’, ‘항아리와 여인들’(1951), ‘메아리’(1964), 1950년대의 ‘귀로’, ‘항아리와 꽃가지’(1957), ‘무제’(1964~1965) 등 앞에 이어진 줄도 길다.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은 “출품작은 모두 개인 소장자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한국 미술 거장의 작품을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며 “누적 관람객 수를 보면 박수근(2010), 장욱진(2011)전보다도 김환기전이 앞선다”고 말했다. 김 화백의 수작 60여점으로 꾸민 이 전시는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5000원.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