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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데스크] 한국적 악습 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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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원순 지식사회부 부장 huhws@hankyung.com
    [한경데스크] 한국적 악습 끊으려면
    근래 작고한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김영삼 정부 말기, 한보철강이 좌초하면서 정계로 비리연루 의혹이 커져 나갈 때였다. 현직 대통령의 실세 아들까지 신문지면에 오르내리던 상황이었다. “(기업 부도라는) 경제 사고에 정치인들이 왜 연루된다고 봅니까?”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이 보시오. 기자 양반, 그게 한국적 전통 아니오.” 그랬다. 경제든 뭐든, 큰 사고가 터지면 정치인, 권력자들은 어김없이 뒤에 서 있었다. 그들 중 ‘재수없는’ 일부가 수사를 받았다. 더 운 나쁜 일부가 사법처리 대상이 됐을 뿐이다.

    정경유착의 풍경, 그와 비슷한 낯익은 모습들이 또 재현된다. 청와대 참모, 실세라는 대통령 측근, 정계 원로…. 명망가들이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또한 다시 확인되는 정권 후반의 한국적 전통이다. 박 전 회장에게서 ‘한국적 전통’이라는 말을 듣고 메모한 것이 15년 전이다. 정경유착과 기업에 붙은 정치권력의 구악 행태가 유독 한국에만 있어온 건 아니지만, 정치판을 경험한 노(老)기업인의 탄식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진화하는 '한국적 전통'

    유감스럽게도 그가 한탄했던 ‘전통’이 지금도 계속된다. 모습이 조금 변했을 뿐이다. 잘나가던 권력층이 검찰청사로 이미 줄줄이 불려갔다. 검찰 주변에서 거명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권 후반기면 나타나는 한국적 전통이다. 정권 말기 쏟아지는 부정과 폭로극이 한국적 전통의 1막이라면, 2막은 새 정권 출범 직후 나타난다. 2막은 이전 정부에 대한 단죄, 보복의 성향이 짙다. 그런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기도 했고 투신도 했다. 이러니 우리 정치권에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권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권력과 연결된 사회적 부조리를 평가하고 밀려난 권력을 단죄하는 것도 오로지 검찰이라는 사실 역시, 우리 스스로는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한국적 전통이다. 말이 좋아 ‘불법의 하수종말처리장’이지, 검찰은 더욱 탄탄해지는 독점 권력이다. 각 부문 한국적 전통이 강해질수록 검찰이 난공불락의 권력으로 더욱 공고해진다는 점도 분명 소홀히 볼 일은 아니다.

    선거철 고질병 '사회적 뇌물'

    이 같은 정치적, 사법적 일탈 못지않게 무서운 건 애초부터 실현불가능한 온갖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을 매수하는 정당들의 매표(買票) 행태다. 부정부패와 비리는 자연스런 시장질서가 아니라 정치·행정 권력이 비대해질 때 어김없이 판쳐왔다. 드러난 정치비리를 캐는 것보다 그런 비리가 때마다 되풀이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원천 제거하는 게 급선무다. ‘선거’를 잘해야 하는 이유다. 유권자들은 더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며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후보가, 어느 정파가 진정 경제를 건강하게 하고 나라를 발전시킬지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유권자들이 방심하면 한국적 전통을 끊기는커녕 변형과 이종의 전통들이 속속 나타날 것이다. 안 그래도 선거철이면 검찰은 은근슬쩍 정치권 동향에 눈치를 살펴온 전통이 있다.

    앞으로 판사들은 재판정을 벗어나 ‘언론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거리로 뛰쳐 나가는 전통을 새로 만들 지경이다. 이런 사법부의 한국적 전통 역시 좋은 투표로 ‘청정 권력’을 만들어 놓으면 뒤따라 치료가능한 한국형 질환이다.

    허원순 지식사회부 부장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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