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근로시간 단축, 탄력적 운영을
약 20여 년 전에 일본의 한 장관이 미국인들은 게으르다(?)고 발언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본의 평균 근로시간이 미국보다 훨씬 길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미국의 반박이 흥미로웠다. 일본의 경우는 주로 남자만 직장을 가지고 여자는 가사 업무를 전담하는 반면, 미국은 남자의 가사 분담 시간이 일본보다 길어, 직장근로 시간과 가사노동 시간을 합해 보면 미국인이 일본인보다 더 부지런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임금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 평균은 2111시간이었다. 반면 미국은 1749 시간, 일본 역시 1733 시간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의 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길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한 것인가? 국가 전체의 총근로시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 한 국가의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고용률을 보면 선진국의 경우 대개 70% 전후이다. 반면 우리는 59.1%에 불과하다. 남녀간 차이도 커서 남자는 70% 정도이지만 여자는 50%에도 못 미친다. 일하는 사람 비율은 선진국보다 낮은데, 일단 일하는 사람들은 매우 장시간의 근로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총근로시간은 선진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렇게 장시간 근로를 하게 되면 생산성은 떨어지고 산업재해는 높아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0개국 중에서 28위이며, 산업 현장에서의 사고사망률 역시 선진국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여가 시간의 부족으로 근로자 삶의 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에 노·사·정은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2020년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1800시간대로 단축하자는 데 합의했다. 정부 역시 장시간 근로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근로시간을 무제한 연장할 수 있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대한 개선책도 제시되고 있다.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노·사·정이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만으로는 근로시간 단축이 힘들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노동자나 사용자 모두 장시간 근로를 할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생산량이 증가할 때 신규 근로자를 채용하기보다는 기존의 근로자들이 초과근로를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채용, 훈련에 따르는 비용부담뿐만 아니라, 생산량이 줄어들었을 때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차라리 초과 근로 수당을 주면서 기존 근로자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다.

근로자 입장 역시 초과 근로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초과근로 수당이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손해를 정부가 모두 보전해 줄 수도 없다.

그런데 근로자 입장에서는 가계소득이 유지될 수 있다면 부부가 같이 노동시장에 나가고, 가사도 분담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사회 전체 입장에서도 중장년층만 일하고, 청년은 노동시장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고령층은 일찍 퇴출하는 것보다는 모두가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듯한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 확충 등이 오히려 근로시간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해 줄 수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을 단축한 만큼 생산성을 향상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존의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 등을 더욱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모두가 손해 보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최강식 < 연세대 교수·경제학 객원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