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밥상까지 지배했던 성리학조선 사대부의 美食 트렌드
식전방장(食前方丈). 매우 호사스러운 밥상을 뜻하는 사자성어다. 사방 열 자나 되는 상 가득히 차려진 음식이라니 두말할 게 없다. 이 말은 중국 진나라 무제 때의 재상 하증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하증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인물이었다. 한 끼 밥상에 1만전을 들이고도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만한 게 없다”며 투정부렸다고 한다. 맹자, 소동파 등 여러 사람들로부터 탐식가로 조롱을 받을 만했다.

청빈한 선비의 나라 조선에도 하증 못지않은 탐식가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엔 탐식을 부도덕하게 여겼지만 권세가들은 예외없는 탐식가들이었다. 중종 때의 권신 윤원형이 대표적이다. 그의 탐식기질은 탄핵 상소에도 나와 있다. 궁중의 사옹원처럼 집에 선부(남자요리사)를 두었고, 식전방장에 팔진미를 즐기면서도 하증처럼 ‘젓가락 갈 데가 없다’며 투정부렸다는 것이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밥상까지 지배했던 조선시대의 탐식 보고서다. 갖가지 사연과 형태로 음식과 맛을 탐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조선 사대부들의 미식 트렌드를 드러내 보인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도 맛있는 음식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음식비평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남긴 그는 스스로를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친구인 명필 한석봉에게 “나는 평생 구복(口腹)만을 위한 사람”이라고 적어 보내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이 풍부한 남원이나 가림(공주)의 수령으로 보내달라고 이조판서에게 청을 넣었고, 귀양을 가면서도 새우와 게가 좋은 함열로 보내달라고 로비를 했다니 알 만하다.

또 중종의 사돈 김안로는 개고기 맛에 빠져, 개고기 요리를 바친 사람들을 요직에 등용해 구설에 올랐다. 화완옹주와 함께 정조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은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겼다고 한다. 돈 많은 중인 중에도 맛을 탐닉한 이들이 많았다. 숙수를 집으로 불러 궁중요리를 해먹기도 한 역관 이표는 중인들의 음식사치를 엿볼 수 있는 책《수문사설》을 남기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숙수 박이미의 우병(토란떡·芋餠), 동과중(동아찜)은 임금에게 진상되기도 했다고 한다.

탐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귀양살이를 하면서 포만감을 위해 상추로 밥을 싸먹고, 개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다산 정약용, 선비의 조악한 밥상을 상징하는 명아줏국을 예찬한 이익, 선비의 식사는 인격도야에 필요한 힘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 이덕무 같은 이들이다.

사나이의 기개를 상징하는 음식 우심적(소염통구이)과 일종의 구이요리인 설야멱 등 쇠고기 요리, 안빈낙도와 귀거래의 아이콘 순채, 열구자탕(신선로), 승기악탕(스키야키) 등 조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외국 음식에 얽힌 이야기도 새롭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