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7명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찬성 이유로 가족들의 고통, 고통만 주는 치료, 경제적 부담 등을 꼽았다. 가족 동의나 본인의 사전 의사 표시가 있다는 전제 아래 무의미한 생명 연장보다는 존엄한 죽음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번 설문은 민감한 생명윤리에 대한 정부의 첫 국민 인식 조사여서 주목된다. 2009년 고 김옥경 할머니 사례로 논란을 빚었던 안락사 문제를 공론화할 의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안락사 허용 여부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제기돼온 인류의 오랜 종교·도덕·철학적 논쟁거리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명예롭게 죽을 권리와 죽음은 신의 영역이라는 종교적 관점이 맞서왔다. 시대, 나라, 상황마다 잣대가 달랐기에 공통의 기준을 정하기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네덜란드 벨기에가 안락사를 합법화 했고, 스위스는 용인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 일부 주에선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일본도 임종이 다가올 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명예사(존엄사)’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도 연명장치를 이용해 몇달씩 생명을 유지하는 게 가능해졌다. 죽음까지도 의료화된 세상이다. 물론 윤리적 논란을 빚는 적극적 안락사(의사조력 자살)까지 허용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극적 안락사마저 금지시킨다면 급격한 고령화 속에 전국 병상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연명장치를 단 임종 직전 환자들로 가득 찰 수도 있다. 죽음만도 못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생명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장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조심스럽게 재검토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