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증권결제 선진화 '안전성' 이 핵심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보통사람도 기술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터치패드나 음성인식 기술의 작동 원리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아이폰 등 스마트 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잡스의 철학을 증권시장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증권시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조원의 자금이 오가지만 그 많은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결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일반투자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규모 거래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결제제도를 구축,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 16일부터 시행한 ‘증권시장 결제제도 선진화’ 방안은 점점 복잡해지고 방대해져 가는 시장에 대응해 투자자들이 더욱 쉽고 편리하게 주식 및 채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증시는 2004년 이후 펀드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거래 규모는 2.5배, 결제 규모는 1.5배 증가했으나 증권 결제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제 지연이 만성화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예탁결제원은 이번 선진화 방안을 통해 장내 주식결제에 이연결제 방식을 도입했다. 이연결제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주식을 판 증권사가 당일 오후 4시까지 해당 주식을 납부하지 못한 경우 이를 다음 결제일로 넘겨 처리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주식 납부를 완료할 때까지 결제 마감이 연기돼 밤늦게까지도 당일치 결제 업무가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증권사 등 관련 기관의 업무 처리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오후 4시에 당일 결제를 마감하고 납부되지 않은 증권은 다음날로 넘겨 처리하면 된다. 또한 시중은행이 맡던 대금결제은행 역할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담당하도록 해 대금 결제의 안전성을 높였다. 이와 함께 증권사와 기관투자가 간에 이뤄지는 주식 기관 결제에 다자간 차감 방식을 도입해 일 평균 결제대금 규모를 1조2000억원가량 줄였다. 예탁결제원이 증권사와 기관투자가 간의 결제 이행을 보증하는 역할을 맡아 결제 불이행 위험도 최소화했다.

채권시장의 결제 효율성도 높아진다. 장내 국채의 결제 개시시점을 오후 3시에서 오전 9시로 앞당겨 결제 처리를 신속히 할 수 있도록 했고 기존의 거래 건별 결제방식을 종목별 차감 후 결제방식으로 바꿨다. 건별 결제를 차감 후 결제로 바꾸면 결제 건수가 줄어 업무 처리 속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장내 및 장외 국채에 대해 증권사가 매수한 국채를 담보로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중 RP(환매조건부매매) 제도를 도입, 대금결제 불이행 위험을 축소했다. 채권시장의 결제제도 선진화 방안은 다음달 6일 시행된다.

결제제도 선진화 방안이 갖는 또 하나의 의의는 국내 증시의 결제제도를 글로벌 표준에 맞게 개선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새로 도입한 이연결제와 차감결제, 일중 RP 제도 등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결제제도 선진화는 1차적으로 증권사와 기관투자가 간의 결제 지연 혹은 불이행 위험을 방지하고 업무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결제 시스템의 안전성과 효율성이 높아지면 개인투자자에게도 그 효용이 돌아간다. 증시의 결제 완료시간이 이전보다 1시간 이상 앞당겨지는 등 시행 초기지만 새 제도의 효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이 결제 불이행 등에 대한 염려 없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결제제도 선진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가치다.

김경동 <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kkd0113@ksd.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