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말 반복되는 대통령 탈당 요구, 이번엔…
“대통령을 억지로 퇴출할 수는 없고,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위해 대통령 스스로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옳은지 판단할 문제다.”(18일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19일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야당의 대대적인 정권 심판 공세를 피하려면 이 대통령의 탈당을 통한 ‘MB 정부와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권 말이면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탈당은 책임정치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야 한다는 요구는 주로 쇄신파 주변에서 나온다. 한나라당 개혁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한 김종인 위원은 19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총·대선에서는 결과적으로 현 정권 심판론이 나올 것이고, 야당이 그런 심판을 들고 나오면 한나라당이 처하게 될 상황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이 대통령 탈당을 거듭 주장했다.

쇄신파인 권 의원은 “(앞으로) 1년 내내 당적을 가진 대통령에 대한 흔들기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국정은 표류할 것이며 고통은 국민에게 가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대통령이 중립지대에 계시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탈당 주장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안다. 직접 대응하지 않겠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친이계 핵심 이재오 의원은 “비대위원이든 누구든 대통령을 탈당시켜야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을 나가면 된다”며 “아버지가 잘못한다고 자식이 아버지를 호적에서 빼자는 것은 패륜”이라고 비판했다.

친박(친박근혜)계는 이 대통령 탈당 요구에 신중한 자세다. 친박계 유승민 의원은 “이 대통령의 탈당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당이 깨지는 빌미를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나 비대위가 제공할 이유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학자들도 비판적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미국 대선 때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인기가 없었지만 공화당에서 탈당하라고 하지 않았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반복된 여당의 정권 말 대통령 탈당 요구는 정책 실패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떠넘기려는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권과 관련한 CNK의 주가조작 의혹,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비리의혹 등에 대한 검찰수사로 현 정권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대통령 탈당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2007년)과 김대중 전 대통령(2002년), 김영삼 전 대통령(1997년), 노태우 전 대통령(1992년) 등 ‘87년 체제’ 이후 대통령들은 모두 정권 말에 떠밀려 여당을 떠났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