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졸라 탱고 하모니카로 들려줄게요"
“제 콧구멍이 짝짝이에요. ‘텅 블럭’이라는 주법을 주로 쓰기 때문에 오른쪽 입술로만 불거든요. 하모니카가 준 일종의 훈장이죠. 다섯 살 때 외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 문방구 하모니카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15㎝ 남짓한 길이의 하모니카 하나로 세계 무대를 제패한 하모니시스트 박종성 씨(26)는 얼굴 근육을 찡긋하며 영광의 상처를 내보였다. 박씨는 지난달 정규 데뷔앨범 ‘딤플(Dimple)’을 발매하고 이를 기념하는 단독 공연을 오는 2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연다. 그가 들고 온 작은 가방을 열자 하모니카가 빼곡하다.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모두 다르다.

“이건 가장 일반적인 트레몰로 하모니카입니다. 피아노로 치면 흰 건반만 있는 것과 같아서 두 개를 한꺼번에 겹쳐서 연주하기도 하죠. 조금 두꺼운 이건 반음계가 가능해 빠른 곡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크로매틱 하모니카,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이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는 투박하고 거친 소리를 내요. 성대와 가까운 혀를 꺾어서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어렵죠.”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닌다. 열일곱 살 때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청소년 트레몰로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국내 솔로이스트로서는 처음으로 국제 하모니카 대회 수상자가 됐다. 2008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는 성인독주, 2중주, 앙상블 등 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첫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2009년에는 4년마다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 하모니카 콩쿠르에서 자작곡으로 솔로 부문 1위, 크로매틱 재즈 부문에서 2위, 지난해 전일본 대회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 관악 부문에 최초의 하모니카 전공생으로 입학해 지난해 예술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최초라는 말에 익숙해져버리면 ‘최고’와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요. 최초는 한 번뿐이지만 최고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잖아요. 세계의 경쟁자들을 찾아다니며 점점 고개를 숙이는 법과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는 열세 살 무렵 문화센터에서 하모니카 스승 최광규 씨를 만나 처음 배운 뒤 또래들과 하모니카 4중주단 ‘하모니 키즈’를 결성, 자원봉사 연주 활동을 다녔다. 스승이 자비를 털어 보낸 일본 청소년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뒤 ‘어디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하모니카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장르와도 어울릴 수 있다는 것. 재즈와 클래식, 가요와 록까지 한계가 없다. 그는 지난해부터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가브리엘의 오보에,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등 다양한 곡을 연주해왔다. 연주 장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 “하모니카로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느냐”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는 작곡과 지휘 공부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자작곡이 40곡이 넘는다. “작곡은 음을 조합하는 과정이고, 지휘는 완성된 음악을 분해하는 작업이죠. 하모니카 콘체르토 등 오케스트라곡을 만들고 싶은데 지휘와 작곡을 다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습니다.”

그의 꿈은 하모니카의 대중화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악기여서 서민적이고 일상적인 악기로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종류도 150가지가 넘고 굉장히 예민한 악기라는 것. 혀의 위치, 입술 모양, 앞니와의 거리, 턱의 각도, 혀끝의 위치, 호흡, 입주변 근육까지 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1000개가 넘는 공연이 열리고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는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를 휩쓸고 있어요. 홍콩은 왕립 하모니카 오케스트라, 황실 5중주단이 국가적 지원을 받고,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클래식 악기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하모니카와 피아노 듀오의 무대로 피아졸라의 탱고 등 하모니카를 위한 클래식 곡을 연주한다. 밴드 세션과 함께 재즈 음악 등 앨범 수록곡과 자작곡도 들려줄 예정이다. (02)580-1300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