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스타일러 개발 뒷얘기
LG전자가 의류관리기 스타일러 개발을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다. 하지만 최초 기획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류와 관련된 가전제품은 세탁기, 다리미 정도가 전부였다.

LG전자는 고급 의류와 기능성 의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존 세탁기만으로는 시장을 확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으로 제품 기획에 들어갔다. 국내는 물론 미국 독일 영국 등 각국의 시장을 분석한 끝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스타일러를 개발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06년 10월 스타일러 개발팀은 4년6개월의 연구개발 대장정에 들어갔다.

스타일러 개발팀이 당장 봉착한 난제는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세탁이 안 되는 고급 의류를 관리해주는 솔루션은 물론 물세탁 이후 건조, 탈취, 주름 제거, 보관 등 일련의 과정을 담당하는 솔루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이다. 제품 캐비닛(외형) 크기와 모양부터 결정해야 했다. 눕히는 형태가 될 수도, 세우는 형태가 될 수도 있었다. 무작정 크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가정집에 맞는 최적의 크기와 형태를 찾아야 했다.

주름을 펴기 위해 힘을 가하는 결정적인 해결책은 무빙행어(Moving Hanger)에 있었다. 옷을 걸어놓으면 좌우로 흔들어줘 옷감을 풀고 주름을 펴주는 장치다. 처음부터 이 같은 방식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자석을 이용해 흔들어줄 것인지, 기차 레일을 이용할 것인지 다양한 방법을 검토했다. 힘껏 흔들어줘 잘 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음이 적어야 하고 오래 사용해도 끄떡없는 견고성이 뒷받침돼야 했다.

최적의 속도, 진동 간격, 거리를 찾아내기 위해 1년 반 동안 연구를 진행했다. 옷이 마찰에 의해 손상돼서도 안 되고, 소음이 적으면서도 빠른 시간 안에 주름이 확실히 펴져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면서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주부들이 빨래를 널기 전에 한 번씩 털어주는 동작에 착안한 것. 한 번 터는 것으로는 부족하지만 분당 220회의 지속적인 진동을 가해주면 옷감 손상 없이 저소음으로 빠른 시간 내에 주름 제거가 가능했다.

LG전자 스타일러 개발 뒷얘기
다양한 옷만큼이나 다양한 냄새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냄새 제거 실험은 스타일러 연구개발의 백미였다. 일부러 숯불갈비 식당에서 회식을 하고 입고 있던 옷을 회사로 모아 오는 건 예사였고, 담배 냄새를 배게 하기 위해 당구장처럼 흡연자가 많은 곳에서 서성이기도 했다고 한다. 연구실 내에 있는 회의실에 모여 삼겹살이나 고등어를 구워 다른 팀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양신봉 실장(사진)은 “기존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독하게 실험할 수밖에 없었다”며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냄새 제거를 위한 최적의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세탁기사업부의 다음 목표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의류관리기 스타일러가 전 세계 개발자들이 의류관리기를 연구할 때 글로벌 표준(Global Standard)이 될 수 있도록 기준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양 실장은 “스타일러에 대한 좋은 반응이 계속돼 세탁기 시장에 이은 또 하나의 시장 창출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