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아쉬운 고위공무원 명퇴
“저도 이제 공직을 떠날 날이 5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 같네요. 퇴직하면 50대 중반 밖에 안 될 텐데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기획재정부 국장)

재정부에서 고위공무원(1급)들이 잇따라 옷을 벗었다. 지난달 말 구본진 재정업무관리관과 박철규 기획조정실장이 명예퇴직한 데 이어 강호인 차관보까지 최근 용퇴했다. 이들 세 명은 모두 행정고시 24회다. 나이도 1957년생 55세로 같다.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는 요즘 한창 일할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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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실장은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공모에 지원했다. 나머지는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다. 강 전 차관보는 “집에서 쉬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시행된 공직자윤리법은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4급 이상 공무원이 퇴직하기 전 5년 동안 맡은 업무와 관련된 회사에 공무원 퇴직 이후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 퇴직 고위관료가 일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구본진 전 관리관은 공교롭게도 퇴임한 지난 9일 직원들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상사’에 선정됐다. 강호인 전 차관보는 국장 시절 공기업 개혁을 주도하고 차관보를 맡은 이후에는 거시경제 운용을 무리없이 해냈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박철규 전 실장 역시 정치권 언론 등과의 업무 조율을 매끄럽게 해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물론 일을 잘한다고 해서 모두 승진하거나,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위로 갈수록 자리가 줄어들고 흐르는 강물처럼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단지 고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나이나 입사 기수에 도달한 모든 사람들이 현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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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재정부 1급 공무원들이 대거 명퇴한 것은 후배 기수인 김동연 예산실장(26회)이 2차관으로 승진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선배들이 후배 밑에서 일하기 곤란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신년연설에서 강조했던 ‘100세 시대’에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문제다. 입사 후배가 선배보다 높은 직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특히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돼야 하는 공직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다.

서욱진 경제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