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세 번 언급한 박근혜 "논쟁 끝"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한나라당 내 ‘보수’ 삭제 논쟁을 정리했다. 이날 비대위 회의장에 굳은 표정으로 나타난 박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벼랑 끝 한나라당’이란 표현을 세 번이나 썼다. 차분했던 평소와는 달리 격앙된 모습이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비대위를 흔들지 말라”며 친이(친이명박)계와 쇄신파의 ‘재창당론’도 일축했다. 비대위원장으로서 현안에 대해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뜻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박 위원장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오늘 이 부분에 대해 결론을 지었으면 한다”고 말을 꺼냈다. 결국 비대위는 토론 끝에 정강정책의 보수 용어 삭제를 둘러싼 논의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종인 비대위원이 보수 삭제 필요성을 거론하며 커진 당내 논란은 급속히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 비대위원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가 말한 것은 보수의 가치를 버리자는 게 아니라 ‘보수’라는 표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며 “결정을 했으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출범 이후 ‘중도’로의 확장을 모색해온 박 위원장이 이 논쟁을 서둘러 끝낸 것은 분란이 급속히 확산되는 걸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상당수 의원이 보수 삭제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당은 이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한 측근은 “이러다간 당 쇄신이 보수 삭제 논란으로 어그러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념이나 정체성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으로 번지면 당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보수 삭제 카드를 접은 이유로 분석된다.

박 위원장은 재창당 논란에 대해서도 쐐기를 박았다. 그는 “내용이 안 변하고 간판만 바꿨다는 것은 국민들이 더 용납하기 어렵다”며 “국민은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쇄신에 어떤 내용이 담겼고 어떻게 실천하느냐를 보고 한나라당의 변화를 평가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나라당 상황에 대해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있다”고 말했다.

또 비대위에 대한 ‘견제’를 경고하고 나섰다. 박 위원장은 “쇄신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쇄신 자체를 가로막는 언행이나 비대위를 흔드는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며 “비대위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돕고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비대위원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당을 살리고 정치를 바꾸겠다며 큰 결정을 내린 분들로 이들이 정치하러 온 것처럼 바라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정치쇄신분과위는 다음 비대위 회의인 16일까지 공천기준에 대한 결과를 내달라”고 요구했으며 “설 전에 모든 과정을 마치려 한다”고 덧붙였다. 외부 비대위원 6명은 4월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또 박 위원장 지시로 공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돈봉투’ 살포와 같은 행위를 한 후보자는 자격을 즉각 박탈하기로 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