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기업이 신규투자 잦으면 '이상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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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공시' 뜯어보기 - (5) 횡령·배임 징후
최근 3년간 상장폐지 기업, 절반 이상이 횡령·배임
MOU 체결 후 번복 공시…회의록에 막도장땐 의심
최근 3년간 상장폐지 기업, 절반 이상이 횡령·배임
MOU 체결 후 번복 공시…회의록에 막도장땐 의심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작년 말까지 상장폐지된 218개사 중 절반인 109개사가 횡령·배임 사실을 공시했다. 통상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횡령·배임을 공시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금융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횡령·배임 기업의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고 투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 번복에 늑장 공시까지
컴퓨터 하드디스크 생산업체인 이앤텍은 2007년 매출 510억원, 영업이익 28억원의 건실한 회사였다. 하지만 2008년 8월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인 홍상민 씨가 이원호 씨에게 경영권을 넘긴 후 회사는 급격히 나빠졌다. 2008년 80억원에 이어 2009년에도 25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2009년 1월 이앤텍은 금광 개발사업과 부동산·리조트 개발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그해 2월에는 세븐에너지스틸과 인도네시아의 ‘파솔로(PASOLO) 금광’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3개월 만인 5월에 MOU 계약을 변경하고 6월에는 MOU 자체를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외 자원 개발 공시에 투자자의 확인이 어려운 MOU를 이용하고 이것조차 번복한 것을 볼 때 신규 사업에 대한 의심을 할 만했다”고 말했다.
2009년 10월과 11월에는 어음 위·변조 발생 사실을 늑장 공시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는 내부 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또 유상증자 대금을 재무구조 개선에 쓰지 않은 것도 회사 경영에 의문을 갖게 하는 점이다. 이앤텍은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1월 상장폐지 전까지 세 차례에 걸쳐 66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앤텍은 6월 횡령설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미확정 공시를 냈으나 8월 외부감사인이 반기검토의견을 거절했다. 결국 8월 말 이원호 씨를 앞세워 회사를 인수했던 실질사주 이기훈 씨가 59억원을 횡령했고 배임금액이 35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공시했다.
◆내부 통제 장치 작동 여부 점검
이처럼 횡령·배임 사실이 공시되기 전이라도 그 징후를 공시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회사의 재무상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수년간 영업손실이 계속되는 회사의 경영진은 투자활동에 주력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 횡령·배임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특수관계자나 계열회사 등에 대한 단기 대여금, 선급금, 미수금 등에 설정된 대손충당금 내역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우 횡령·배임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사록을 통해 내부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확인하면 도움이 된다. 이를 보면 경영진이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사 간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통제 장치가 부실한 회사의 이사회 의사록은 수개월 동안 참석 이사가 같고 반대하는 이사도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사록에 급조한 막도장을 날인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업보고서상 외부감사인의 내부 통제 장치에 대한 의견서를 참고해도 좋다”고 조언했다.
자금 조달 시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자금의 사용 목적대로 자금이 쓰여지고 있는지도 정기보고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예정된 사용내역과 실제 집행내역이 다른데도 그 사유를 모호하게 적거나 구체적인 자금 사용내역을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는 회사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