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유럽 古음악 무대 13년…우리 가곡 가능성을 제대로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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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Power - 빈슈트라우스와 협연 소프라노 임선혜
18일 지휘자 구트와 공연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서 바흐 수난곡 녹음 예정
18일 지휘자 구트와 공연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서 바흐 수난곡 녹음 예정
“지난 2년 반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그는 오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빈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신년음악회에서 요한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중 ‘친애하는 후작님’, 로베르트 슈톨츠의 ‘프라터의 나무에 다시 꽃이 피고’ 등을 부른다.
“친숙한 노래를 신나게 들려드릴 좋은 기회예요. 유쾌한 캐릭터로 소문난 지휘자 페터 구트와의 협연도 기대돼요.”
서울대 음대에서 박노경 교수를 사사하고,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로 유학을 떠난 것은 1998년. 대학원 과정이 끝나기도 전, 그를 눈여겨 봤던 한 매니지먼트사가 거장 필리프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에 대타로 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그는 일단 “다 아는 노래”라고 거짓말을 해놓고는 밤을 새워 연습했다. 새벽 기차를 타고 7시간을 달려 브뤼셀 공연장으로 향하던 그 길은 유럽 고음악계의 프리마돈나가 탄생하는 길로 이어졌다.
르네 야콥스, 지기스발트 쿠이겐, 윌리엄 크리스티, 파비오 피온디 등 고음악계 거장들은 헤레베헤를 감동시킨 이 ‘아시아의 종달새’를 중요한 공연마다 주역으로 발탁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시리즈로 한 해 다섯 작품을 연기하기도 했다. ‘가짜 정원사’에서는 상반된 캐릭터인 세르페타와 비올란테를 동시에 맡아 호평받았다.
베를린 슈타츠오퍼, 하노버 국립극장, 파리 가르니에 등을 거친 그는 고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스위스 인스브루크 축제에서 톱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여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 가곡 축제 ‘대지의 노래’에서는 ‘봉선화’ ‘산유화’ 등 우리 가곡을 불러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관객의 시선이 제게 딱 꽂혀서 따라다닐 때, 그 희열은 말로 다 못해요. 고음악이 제 삶에 우연히 다가왔으니, 이제 이론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나죠. 예술가곡 장르에도 관심이 많아서 음반도 내고 싶어요. 우리 가곡이 국경을 넘어 기대 이상의 감동을 끌어낼 수 있다는 걸 확인했거든요.”
이 ‘작은 거인’의 비밀 병기는 특유의 친화력이다. 집시 같은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도 향수병에 걸리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오페라 팀이 꾸려지면 늘 먼저 발벗고 나서 파티를 제안하고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요. 음식을 나눠먹고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서먹했던 가수들끼리 쉽게 친해지고, 공연도 더 잘되죠.”
그의 마당발 인맥은 한국에서도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노영심 씨, 소설가 공지영 씨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두루 친하다. 그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두 동생과 초등학교를 네 번이나 옮겨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지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웠고, 새로운 사람들과 빨리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는 노하우도 익힌 것 같다”고 말했다.
밝은 성격을 감춰야 했던 유학 초기를 떠올리며 “말이 안 통하니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것 같아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까지 악착같이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성악가로서 고대하던 일을 벌인다. 고음악과 종교음악에 정통한 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에서 바흐 수난곡 녹음을 하는 것.
그는 “외국 사람들에게 정말 잘 안 내주는데 ‘가문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대 음반회사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10년째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에 몸담고 있는 그에게서 고음악에 대한 고집이 묻어났다.
“어려운 곳에서 더 잘하고 싶어요. 학구적인 레이블이고 정도를 걷는 곳이죠. 동양인이 전무한 곳, 성악이 전무한 곳에서 먼저 저를 인정해줬으니 의리를 꼭 지킬 겁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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