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촉발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다른 의원들에게도 돈이 전달됐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더욱이 정권 초기에 당 대표가 되려면 소위 친이 핵심그룹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연결고리가 드러나면 현역 의원들은 물론 현 정권 핵심 실세들까지도 줄소환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여기에 2010년 전당대회 돈봉투까지 수사가 진행된다면 여권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만다.

사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도 한나라당은 이미 명운이 끝난 당이나 다름없었다. 친서민과 상생을 내세우고 야당을 좇아 포퓰리즘 경쟁에 본격 몰두하면서 당의 정체성도 색깔도 모두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정강 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까지 논의하는 것을 보면 당 스스로도 이미 정체성의 해체를 당연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최근의 변화라는 것도 그저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의식한 궁여지책일 뿐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념에 근거한 것도, 당의 장래를 두고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것도 아니다. 과거 민정당을 떠올리게 하는 노인정치식 인물들과 전당대회 비리, 개혁에 대한 거부, 기득권 옹호 등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정당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더구나 복지정책조차 가진 자들이 동냥 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누구라서 이런 정당을 지지할 것인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쓰러져가는 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떠맡았지만 여기에도 당 안팎에서 이런저런 불만과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침몰 직전의 난파선 꼴이 된 한나라당에 이제 남은 선택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당을 해체하고 간판을 내리는 게 좋겠다. 돈 봉투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은 검찰수사와는 별도로 고해성사라도 하고 정치에서 물러나는 게 도리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건전한 보수정당이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