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에어컨이 이렇게 관심을 받은 건 처음입니다.” 대형 빌딩에 한 뭉텅이로 들어가는 게 시스템에어컨이다. 대부분 상업용으로 쓰여 건물주(主) 외에 일반인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 삼성·LG전자도 시스템에어컨 시장에선 ‘마이너’에 불과하다. 휴대폰과 TV에선 세계를 호령하는 삼성전자도 시스템에어컨에선 10위권 밖이고 LG전자가 7~8위 정도다.

그런 시스템에어컨이 갑작스레 주목받고 있다. 지난 12일 나흘간 일정으로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막한 국제냉난방공조전에서 스티커 소동을 겪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등 타이틀을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첫 테이프는 LG전자가 끊었다. 이 회사는 지난 12일 오전 ‘국내 시스템에어컨 중 최고 에너지 효율인 5.68을 달성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전기에너지 1을 투입하면 5.68배의 냉난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전시 제품에 모두 ‘국내 최고’라는 부착물을 붙였다.

이내 삼성전자가 반격했다. 같은 날 오전 “국내 최고 효율인 5.74 제품을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허를 찔린 LG전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 시간 만에 “에너지 효율을 5.92로 끌어올렸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전시 제품에 붙여놓은 ‘5.68’ 표기를 ‘5.92’로 바꾸며 “가장 전기를 덜 먹는 제품”이라고 홍보했다.

승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다음날인 13일 “효율 5.99인 제품이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인증을 받았다”며 재역전해서다. 1위 자리를 하루 만에 되찾을 수 있던 배경에 대해 “1주일가량 걸리던 에너지 효율 인증 절차가 요즘은 1~2일 만에 끝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의 시소게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부터 한 달 간격으로 시스템에어컨 효율 1위 자리를 놓고 뺏고 빼앗기를 반복했다. 올 들어 에너지관리공단이 효율 1등급 기준을 3.5에서 5로 올리면서부터 싸움은 더 격화했다.

삼성과 LG는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의미있는 경쟁’이라고 주장한다. 고객 불만이 에어컨 가격과 설치, 소음, 애프터서비스 등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숫자싸움에 매달리는 이유란다. 그러는 사이 세계 시스템에어컨 시장은 미국, 중국, 일본 업체들에 다 내주고 있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