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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그리스의 '인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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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훈 국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취재여록] 그리스의 '인질극'
    새해 들어 그리스의 ‘폭탄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인 판테리스 카프시스는 지난 3일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떠날 수 있다”고 했고, 이튿날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는 “그리스가 3월에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발언이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그리스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의사들은 지난 2일부터 의료부문 지원액이 줄어든 데 대한 항의 표시로 진료를 거부하고 있고, 약사들은 약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해외 언론들은 그리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유로존 탈퇴’ 발언이 또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2010년부터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나눠서 지급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은 오는 15일 실사단을 아테네에 보낸다. 실사단이 긴축정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차기 집행 예정인 구제금융 이행이 미뤄진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그리스 정부가 실사단을 압박하기 위해 강경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채권단에 더 많은 빚을 탕감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리스가 실사단과 채권단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유로존 전체를 볼모로 잡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유로존에서 한 나라라도 탈퇴한다면 유로화의 신뢰도는 땅에 추락한다. 다른 나라들도 경기 부양을 위해 유로화를 버리고 통화 가치가 낮은 독자 통화를 쓰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유로존 은행들은 대부분 유로화 표시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유로화 가치 폭락은 제2의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리스는 2010년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부터 이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9년부터 국가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는데도 은퇴자들은 생애 최고 월급의 95%를 연금으로 받았고, 공무원들은 하루 6시간밖에 근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의 도움으로 연명해 온 그리스가 이 시점에 유로존 탈퇴를 언급하는 것은 또다른 모럴해저드라고 볼 수 있다.

    이태훈 국제부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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