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하는 개그맨 임혁필…TV서 안보인다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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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의 한 소극장. 공연이 없는 월요일과 방송 스케줄이 있는 화요일을 제외하고 요즘 임혁필은 매일같이 이곳으로 출근 중이다. 지난해 초연한 ‘펀타지 쇼(Funtasy Show)’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올해 장기 공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방송에서 얼굴을 볼 수 없다 했더니 그런 까닭이 있었다.
전 세대가 공감하는 대중적 소재인 마술·버블·댄스·마임 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펀타지 쇼는 재미(fun)와 환상(fantasy)이 공존하는 넌버벌 공연으로 임혁필이 직접 기획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개그맨이라는 본업과 평생의 즐거움이라는 그림(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에 이어 공연 기획과 연출이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장을 낸 그는 요즘 연말 특별 공연까지 겹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그맨이 대학로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의 아류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요. 대학로에서의 개그 공연은 신인들의 오디션 무대 성격이 강한 편이다 보니 돈을 주고 보러 오는 관객으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유명인이 나온다는 포스터를 보고 갔더니 아예 나오지 않거나 자기 코너만 잠깐 하고 가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임혁필이 이름을 걸고 공연한다고 하니 ‘또 비슷한 개그 공연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 개그맨은 저 하나고 나머지는 마술사, 버블 아티스트 등 공연 전문가들이죠.”
입소문 덕분에 관객 꾸준히 늘어
시작은 이랬다. 마술사, 버블 아티스트들과 함께 간 행사에서 MC를 보던 그는 ‘한 공연에서 버블 쇼와 마술 쇼 등 모든 퍼포먼스를 다 볼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고 공연 기획·연출·출연 등 1인 3역을 맡았다. 특이한 건 무대에서 그는 개그가 아닌 샌드(sand)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는 사실. 자신의 특기인 그림과 퍼포먼스를 접목할 방법을 찾던 그는 우연히 샌드 아트라는 장르를 알게 됐고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
‘내 공연’에 대한 꿈은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설 수 있는 개그 무대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고민이었다. “음악 프로그램은 어린이 대상, 10대 청소년 대상, 20~30대와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각각 있잖아요. 그런데 개그맨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데 프로그램은 하나죠. 갈수록 후배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민해 봤어요. 무대가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연기자인 송승환 선배가 공연 기획자로 성공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싼 대형 공연은 제값 주고 볼지언정 소극장 공연은 할인 티켓이나 초대권부터 찾는 사람이 많았고, 그나마도 경기가 어려워지면 문화생활부터 줄이는 탓에 경제적으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제작비가 적은 소극장 공연이다 보니 공격적인 홍보나 마케팅을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공연을 직접 본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꾸준히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벤허를 만든 윌리엄 와일러는 ‘신이시여, 제가 진정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라고 했다지만 사실 자기 공연을 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항상 부족하고 아쉬워요. 공연을 보고 즐거워하는 분들을 보면 힘이 나고, 반대로 ‘많이 본 장면’이라는 일부 관객의 평가는 계속 숙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들이 함께 보고 즐거웠던 기억을 나눌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부 부모님은 어린이 공연이란 생각에 아이들만 들여보내려고 하는데, 전 그럴 때는 입장시키지 않아요. 돈을 벌지 않아도 좋아요. 아이가 공연을 보고 재미있던 장면을 이야기하는데 부모님이 내용을 모르면 대화할 수가 없잖아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장했더라도 막상 시작되면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웃음).”
펀타지 쇼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좀 더 큰 극장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것이 꿈이라는 그는 ‘내가 더 잘나갔을 때 이런 공연을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개그콘서트’에서 ‘세바스찬’ 캐릭터로 인기몰이를 했던 게 벌써 7~8년 전 얘기. 그 후로도 수많은 캐릭터를 선보였고 반응이 좋았던 경우도 많았지만 “나가 있어”를 외치던 ‘세바스찬’ 캐릭터가 워낙 강했던 터라 조금씩 ‘지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현재 채널A에서 최양락·남희석 등 선배와 ‘개그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그는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개그맨이란 본업은 ‘운명처럼’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리운전 사업 CEO 명함 추가
공연 기획, 연출자 외에도 그는 6개월 전 대리운전 사업체의 최고경영자(CEO) 직함을 하나 추가했다. ‘임혁필의 쓰리세븐 대리운전’이 그것. 지인과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마케팅과 홍보를 맡아 브랜드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연 중인 요즘도 대학로에서 명함을 직접 돌리고 홍보용으로 래핑된 마티즈를 직접 몰고 다니기도 한다.
“제가 술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술 좋아하고 차 좋아하잖아요. 술 마신다고 차를 파는 사람은 없잖아요.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생활을 줄이는데 술은 더 마시더라고요(웃음). 그런 면에서 나름 전망이 있는 거죠. 원래는 몇 가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다가 그런 결론을 노출하고 대리운전 사업을 시작한 거예요. 솔직히 다른 대리운전 업체와 특별히 차별화된 건 없어요. 다만 마케팅 수단으로 이벤트를 자주 열고 있어요. 우리 번호가 ‘1588-0777’이라 7번째, 70번째, 700번째, 7000번째, 7만 번째 고객 등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죠.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멀리 내다보고 시작한 사업이라 열심히 발로 뛰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가지 일 모두 ‘연말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그는 오늘도 분주하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전 세대가 공감하는 대중적 소재인 마술·버블·댄스·마임 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펀타지 쇼는 재미(fun)와 환상(fantasy)이 공존하는 넌버벌 공연으로 임혁필이 직접 기획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개그맨이라는 본업과 평생의 즐거움이라는 그림(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에 이어 공연 기획과 연출이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장을 낸 그는 요즘 연말 특별 공연까지 겹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그맨이 대학로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의 아류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요. 대학로에서의 개그 공연은 신인들의 오디션 무대 성격이 강한 편이다 보니 돈을 주고 보러 오는 관객으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어요.
유명인이 나온다는 포스터를 보고 갔더니 아예 나오지 않거나 자기 코너만 잠깐 하고 가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임혁필이 이름을 걸고 공연한다고 하니 ‘또 비슷한 개그 공연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 개그맨은 저 하나고 나머지는 마술사, 버블 아티스트 등 공연 전문가들이죠.”
입소문 덕분에 관객 꾸준히 늘어
시작은 이랬다. 마술사, 버블 아티스트들과 함께 간 행사에서 MC를 보던 그는 ‘한 공연에서 버블 쇼와 마술 쇼 등 모든 퍼포먼스를 다 볼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고 공연 기획·연출·출연 등 1인 3역을 맡았다. 특이한 건 무대에서 그는 개그가 아닌 샌드(sand)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는 사실. 자신의 특기인 그림과 퍼포먼스를 접목할 방법을 찾던 그는 우연히 샌드 아트라는 장르를 알게 됐고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
‘내 공연’에 대한 꿈은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마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설 수 있는 개그 무대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고민이었다. “음악 프로그램은 어린이 대상, 10대 청소년 대상, 20~30대와 중·장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각각 있잖아요. 그런데 개그맨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데 프로그램은 하나죠. 갈수록 후배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민해 봤어요. 무대가 없다면 내가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연기자인 송승환 선배가 공연 기획자로 성공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싼 대형 공연은 제값 주고 볼지언정 소극장 공연은 할인 티켓이나 초대권부터 찾는 사람이 많았고, 그나마도 경기가 어려워지면 문화생활부터 줄이는 탓에 경제적으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제작비가 적은 소극장 공연이다 보니 공격적인 홍보나 마케팅을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공연을 직접 본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꾸준히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벤허를 만든 윌리엄 와일러는 ‘신이시여, 제가 진정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라고 했다지만 사실 자기 공연을 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항상 부족하고 아쉬워요. 공연을 보고 즐거워하는 분들을 보면 힘이 나고, 반대로 ‘많이 본 장면’이라는 일부 관객의 평가는 계속 숙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가족들이 함께 보고 즐거웠던 기억을 나눌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부 부모님은 어린이 공연이란 생각에 아이들만 들여보내려고 하는데, 전 그럴 때는 입장시키지 않아요. 돈을 벌지 않아도 좋아요. 아이가 공연을 보고 재미있던 장면을 이야기하는데 부모님이 내용을 모르면 대화할 수가 없잖아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장했더라도 막상 시작되면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웃음).”
펀타지 쇼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좀 더 큰 극장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것이 꿈이라는 그는 ‘내가 더 잘나갔을 때 이런 공연을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개그콘서트’에서 ‘세바스찬’ 캐릭터로 인기몰이를 했던 게 벌써 7~8년 전 얘기. 그 후로도 수많은 캐릭터를 선보였고 반응이 좋았던 경우도 많았지만 “나가 있어”를 외치던 ‘세바스찬’ 캐릭터가 워낙 강했던 터라 조금씩 ‘지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현재 채널A에서 최양락·남희석 등 선배와 ‘개그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그는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 개그맨이란 본업은 ‘운명처럼’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리운전 사업 CEO 명함 추가
공연 기획, 연출자 외에도 그는 6개월 전 대리운전 사업체의 최고경영자(CEO) 직함을 하나 추가했다. ‘임혁필의 쓰리세븐 대리운전’이 그것. 지인과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마케팅과 홍보를 맡아 브랜드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공연 중인 요즘도 대학로에서 명함을 직접 돌리고 홍보용으로 래핑된 마티즈를 직접 몰고 다니기도 한다.
“제가 술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술 좋아하고 차 좋아하잖아요. 술 마신다고 차를 파는 사람은 없잖아요. 경제가 어려우면 문화생활을 줄이는데 술은 더 마시더라고요(웃음). 그런 면에서 나름 전망이 있는 거죠. 원래는 몇 가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다가 그런 결론을 노출하고 대리운전 사업을 시작한 거예요. 솔직히 다른 대리운전 업체와 특별히 차별화된 건 없어요. 다만 마케팅 수단으로 이벤트를 자주 열고 있어요. 우리 번호가 ‘1588-0777’이라 7번째, 70번째, 700번째, 7000번째, 7만 번째 고객 등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죠.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멀리 내다보고 시작한 사업이라 열심히 발로 뛰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가지 일 모두 ‘연말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그는 오늘도 분주하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