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 물러나도 판사 정년 채운다
법원장이 보장된 임기(2년)를 마친 후 일선에 판사로 복귀해 정년을 채우는 ‘평생법관제’가 이번 2월 법관 인사부터 적용되게 됐다. 대법원은 평생법관제가 정착되면 대법관이 되지 못한 법원장급 고위 법관들이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빚어지는 ‘전관예우’ 폐단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면 평생법관제가 도입되면 한동안 신규 임용되는 판사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6일 대법원에 따르면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고현철 전 대법관)는 9일 회의에서 평생법관제 도입 등 인사제도 개선안을 최종 의결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사진)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위원회 안의 핵심은 법원장의 임기 2년 보장과 임기 만료 후 법원장의 일선 재판업무 복귀다. 위원회의 방침에 따르면 법원장을 2년 역임한 후 일선 고등법원 재판부 등 ‘일선 법관’으로 재배치된다. 이후 다시 법원장이 될 수도 있지만 고위 법관이 되더라도 임기 대부분은 일선에서 보내게 하겠다는 것.

대법원 관계자는 “판사가 정년을 채워 근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법원장은 잠시 맡는 보직’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평생법관제를 시행하려면 한번 법원장이 된 후 10년 이상 법원장 보직만 맡게 되는 현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1990년 이후 퇴직한 판사 1519명 중 정년까지 근무한 경우는 1.3%(20명)에 불과했으며, 법원장이 일선에 복귀한 경우는 최병학 전 서울지법원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돌아온 사례 외에는 전무하다.

지금까지는 법원 내부 경직된 서열·기수문화 때문에 법원장에 한번 임용되면 일선 재판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계속 지법원장, 고법원장을 맡는 게 암묵적 관례였다. ‘수직구조의 관료화’가 되는 셈이다. 고위 법관들은 대법관으로 임명되지 못하거나 아랫기수가 승진하면 통상 옷을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향이 많았다. 이 때문에 2월 정기 인사를 전후해 대법관으로 임용되지 못한 다수 고위 법관들이 ‘용퇴’함에 따라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전관 예우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다.

새 제도가 도입돼도 오랫동안 지속돼온 법원의 서열문화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나온다. 일선의 한 판사는 “처음으로 이 제도가 적용되는 현 법원장들이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일지, 법원 문화가 바뀔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차제에 평생법관제 도입에 따라 신규 법관 임용 개념을 바꿀 예정이다. 내년부터 법관 정년이 현행 63세에서 65세로 늘어나는 데다 평생법관제로 정년을 채우는 판사들이 증가하면 매년 신규 임용되는 법관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 법원처럼 매해 100명 가까운 신규 법관을 임용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드물다”며 “앞으로는 매년 신규 법관을 임용하지 않고, 정년 퇴임 등으로 생기는 법관 공석만큼만 뽑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조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의 취지 등을 따져보면 판사의 고령화는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