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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사자성어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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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천자칼럼] 사자성어의 허실
    엄마가 물었다. “엄마처럼 예쁜 데다 요리도 잘하는 경우를 뜻하는 사자성어는?”. 아들이 웃으며 답했다. “자화자찬.” “아니”란 말에 아들은 고쳤다. “과대망상.” 엄마가 “금 자로 시작하는 거야”라고 하자 아들은 대뜸 “금시초문”이라고 받았다.

    엄마가 원한 답은 ‘금상첨화’. 우스갯소리지만 시사하는 게 적지 않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과 다른 사람(가족 포함)이 바라보는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기대와 현실의 틈이 얼마나 큰지, 아이들에게 사자성어를 요구하면 어떤 답이 나오는지 등.

    우리말에서 한자는 빼놓기 힘들다. 국어사전에 실린 단어의 70%가 한자어란 정도다. 하지만 20~40대는 물론 50~60대도 한자에 서툴다. 1968년 정부 지시로 교과서에서 한자가 삭제된 탓이다. 1972년 중·고교용 한자 1800자를 선정했지만 지금도 국어책 말곤 한글로만 돼 있다.

    따로 배우지 않는 한 한자를 익힐 기회가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얘기다. 이과생은 더하다. 레지던트의 결혼식장에서 축의금을 받는 의대생들이 봉투에 쓰인 한자 이름를 읽지 못해 쩔쩔매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연초만 되면 정치인 등 지도층 인사들의 사자성어 발표가 유행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진년 화두로 ‘임사이구(臨事而懼)’을 내놨다. ‘어려운 시기 큰 일에 임해 엄중한 마음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지혜를 모아 잘 성사시킨다’는 뜻이란 설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정 목표로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를 꼽았다.‘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내용으로, 여기서 물은 시민인 만큼 언제나 시민을 받들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교수신문에선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골랐다.

    사자성어도 잘만 사용하면 귀에 쏙 들어오고 공감 또한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쉬운 건 죄다 나온데다 다소 어려워야 ‘있어 보인다’ 싶은지 자꾸 난해해진다. 말은 기본적인 소통 도구다. 친근감·동질감·유대감은 모두 같은 언어, 비슷한 화법을 쓰는 데서 비롯된다. 세대 구분도,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도 말이다.

    소통이란 서로 알고 이해하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지 내 주장을 위엄을 얹어 전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니 그리 알라’는 식으론 소통하기 힘들다. 해석이 필요한 사자성어로 소통하자고 드는 건 자화자찬이나 금시초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금상첨화란 답을 요구하는 거나 다름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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