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국 美와 당당히 교섭…각 분야 전문가 중용해 전후 혼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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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아젠다, 성공한 리더십
'리더십 공백' 메운 요시다
'리더십 공백' 메운 요시다
일본 정치학자들은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부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정치 지도자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를 꼽는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절망의 순간, 일본 국민에게 ‘쌀’을 가져다 준 요시다 전 총리는 전쟁 책임으로 인해 추락한 일왕의 빈자리를 메우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이노우에 도시카즈 일본 가쿠슈인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승전국으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미국과 당당한 자세로 교섭했던 요시다의 외교 수완은 자신감을 잃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며 “1950년대 냉전이 심해지고 있던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냉전정책의 파트너가 될 정도로 일본의 가치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또 “관료들을 아군으로 만들고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 광범한 분야의 전문가를 주위에 배치함으로써 전후 혼란의 균형추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냉혹한 냉전의 흐름을 간파하고 전쟁 포기와 비무장 정책을 통해 경제대국 건설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엇갈린다. 정치인으로 대성할 만한 인물을 유능한 관료 중에서 직접 선발해 육성하는 ‘요시다식 인재육성 정책’은 전후 일본 사회에 관료주의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요시다가 관료 중에서 발탁한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노벨평화상 수상자), 다나카 가쿠에이 등 이른바 ‘요시다 학교’ 출신들은 일본 정치계의 거물로 성장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관료주의 정치’는 1980년대 이후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전후 극복과 국가 재건의 주요 엔진으로 작동했다. 상부의 명령과 매뉴얼에만 의존하게 했다는 폐단이 지적되고 있지만 당시 일본이 패전의 잿더미를 딛고 산업강국으로 일어서는 데 고도의 효율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
이노우에 도시카즈 일본 가쿠슈인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승전국으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미국과 당당한 자세로 교섭했던 요시다의 외교 수완은 자신감을 잃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며 “1950년대 냉전이 심해지고 있던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냉전정책의 파트너가 될 정도로 일본의 가치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또 “관료들을 아군으로 만들고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넘어 광범한 분야의 전문가를 주위에 배치함으로써 전후 혼란의 균형추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냉혹한 냉전의 흐름을 간파하고 전쟁 포기와 비무장 정책을 통해 경제대국 건설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엇갈린다. 정치인으로 대성할 만한 인물을 유능한 관료 중에서 직접 선발해 육성하는 ‘요시다식 인재육성 정책’은 전후 일본 사회에 관료주의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요시다가 관료 중에서 발탁한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노벨평화상 수상자), 다나카 가쿠에이 등 이른바 ‘요시다 학교’ 출신들은 일본 정치계의 거물로 성장해 총리 자리에 올랐다.
‘관료주의 정치’는 1980년대 이후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전후 극복과 국가 재건의 주요 엔진으로 작동했다. 상부의 명령과 매뉴얼에만 의존하게 했다는 폐단이 지적되고 있지만 당시 일본이 패전의 잿더미를 딛고 산업강국으로 일어서는 데 고도의 효율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