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억원 초과 소득자에게 38%의 세율을 적용케 한 국회의 소득세법 개정에 대해 “세법 자체를 누더기로 만드는 땜질식 처방”이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9월 정기국회에 부작용을 보완할 방안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이번 세법 개정이 졸속으로 처리된, 문제투성이라는 점은 이미 우리가 본란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세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은 정부는 세법을 제대로 만들어 놨는데 국회가 엉망으로 망쳐놨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정말 그럴까. 정부가 지난해 마련한 세법 개정안을 보면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소위 ‘일감 몰아주기 과세’라는 명목으로 30% 이상의 계열사 간 거래에는 기업규모나 거래가격에 상관없이 증여세를 매기도록 해 놓았다. 실질과세 원칙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피해를 주는 대표적인 졸속 누더기 법개정의 전형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대체하는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는 고용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고용을 위축시킨다는 게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소득·법인세 감세까지 철회해 전반적인 조세정책 기조를 감세에서 증세로 돌린 것은 더 큰 문제다. 재계는 이번 세제개편이 일자리 창출은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데도 모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모양으로 세법을 뜯어고친 정부 측 책임자인 박 장관이 국회의 소득세법 개정에 대해 ’누더기’ 운운하다니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소득세 과표구간만 해도 그렇다. 현 체제는 1996년 4단계 과표 체제가 만들어진 후 2005년 한 차례 상향조정된 것을 빼고는 그대로다. 그간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에 따른 조정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소득은 늘고 물가는 올랐는데 과표구간이 상향되지 않아 전체적인 세부담은 계속 늘어왔다. 실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 가구의 월평균소득 증가율에 비해 소득세는 2배 이상 징수됐다. 재정부가 제멋대로 증세해온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게 누더기가 아니면 무엇이 누더기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근본적인 소득세 과표구간 조정에는 나몰라라 해오던 정부가 국회의 졸속 세법 개정을 느닷없이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하물며 헌법상 엄연한 입법기관인 국회의 법개정에 대해 재정부 장관이 왈가왈부하는 게 온당한지도 의문이다. 박 장관은 국회 탓을 하기에 앞서 세법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본연의 역할부터 제대로 하기 바란다. 정부가 제멋대로 소위 ‘무식한 국회의원’을 다루는 그런 시절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