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카스의 저력…15년 만에 '酒權' 되찾다
오비맥주가 하이트진로에 뺏긴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탈환했다. 1996년 ‘천연 암반수’ 컨셉트를 들고 나온 하이트에 정상을 내준 지 15년 만이다. 젊은 층을 파고들고 ‘밀어내기’를 없애 보다 신선한 맥주를 유통시킨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오비맥주 출고량(수출 제외)은 2587만상자(점유율 52.5%·수입맥주 제외)로 2344만상자(47.5%)에 그친 하이트를 제쳤다.

분기별 출고량이 하이트를 앞선 것은 1996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작년 10월에도 53.9%의 점유율을 기록, 하이트(46.1%)와의 격차를 더 벌렸다. 작년 1~10월 점유율은 하이트(50.5%)가 여전히 오비맥주(49.5%)보다 높지만, 수출물량을 포함하면 오비맥주(50.2%)가 하이트(49.8%)를 15년 만에 앞섰다.

점유율 역전의 주역은 ‘카스’다. 1993년 70%대였던 오비맥주 점유율은 1996년 하이트에 역전당한 뒤 2000년 31%까지 추락했다. 오비맥주가 치고 올라온 것은 2007년 간판 브랜드 ‘오비’를 과감히 버리고 ‘카스’를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면서부터다.

2007년 4월 취임한 ‘마케팅의 귀재’ 이호림 오비맥주 대표는 비열처리 맥주 카스의 특징인 ‘톡 쏘는 청량감’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워 20~30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젊음’을 포인트로 잡아 예술과 패션, 스포츠 등 다양한 부문에서 감성 마케팅도 활발히 진행했다. 그 결과 시장조사업체인 시노베이트 조사에서 2008년 20~30대가 선호하는 1위 브랜드에 올랐다.

2010년 초 단행한 ‘유통 혁신’도 카스 상승세에 기여했다. 오비맥주는 카스의 유통기간을 줄이기 위해 매월 말이면 ‘월 출고량’을 늘리려고 도매상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는 ‘밀어내기 영업’을 근절시켰다. 월말 기준으로 200만~250만상자에 달했던 도매상 창고물량이 3~4개월 만에 80만~90만상자로 줄었다.

장인환 오비맥주 부사장은 “맥주는 유통기간이 길어질수록 맛이 떨어진다”며 “소비자들에게 제조된 지 1주일 이내의 카스를 마실 수 있게 해 체감하는 맛이 좋아진 게 카스 약진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카스는 2009년 15.1%포인트 차이였던 1위 ‘하이트’와의 점유율 격차를 작년 1분기엔 1.3%포인트로 바짝 좁혔고, 5월 이후에는 2~3%포인트 차이로 줄곧 앞섰다.

지난해 3월 출시한 신제품 ‘OB골든라거’의 선전도 점유율 상승에 한몫했다. 카스가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였던 40~50대를 겨냥해 중후한 맛을 내세운 OB골든라거는 출시 200일 만에 판매 1억병을 돌파하며 맥주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카스의 공세에 맞서 하이트 브랜드를 쇄신하는 데 소홀했고 드라이피니시d 등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하이트의 하락세를 부추겼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비맥주는 ‘1위 등극’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국세청의 대대적인 세무조사에다 작년 9월1일 맥주(하이트)와 소주(진로)의 통합 과정에서 영업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데 따른 반사이익이 컸다는 점에서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하이트가 여전히 강세”라며 “하이트가 정비된 영업망을 바탕으로 공세를 펼칠 올해부터 진검 승부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합병과 세무조사 등으로 신규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한 하이트진로도 올해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태세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에 합병이 완료되고 통합 영업망 구축 작업이 끝나 올해부터 시너지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1위 탈환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