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 지급준비율 인상 카드 꺼내드나
한국은행이 내년에 지급준비율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이 무이자로 한국은행에 맡겨야 하는 지급준비금을 늘려 급격한 통화팽창기에 유동성을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올해 물가안정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한은은 ‘2012년 통화신용정책 운용방향’에서 “통화정책 및 금융안정 수단으로서 지급준비금 제도의 활용 가능성과 운용방안을 검토하겠다”고 29일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현저한 통화팽창기나 그런 우려가 있을 때 지준율 인상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내년 통화정책 방향에서 지급준비금 제도 활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은은 2006년 12월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금식예금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5%에서 7%로 올린 이후 지급준비금 제도를 통화정책에서 배제해왔다. 통화정책의 기본 틀이 ‘통화량’에서 ‘기준금리’로 바뀐 상황에서 지급준비율을 올리거나 내려봤자 시중 유동성 조절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2006년 한은의 지급준비율 인상은 ‘늑장 대처로 부동산 거품이 커지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할 때였다. 일종의 예외적 조치였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에서도 금융안정 수단으로 지급준비금의 중요성이 재부각되고 있다”며 “이 제도가 갖고 있는 나름의 정책적 기능이 있기 때문에 한은도 운용 방안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시중 유동성이 급팽창할 때 금리 정책의 보조 수단으로 지급준비금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의 채무 규모에 따라 지급준비율을 차등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또 중소기업에 대한 저금리 정책자금인 총액한도대출 때 신용등급 우량기업을 제외할 방침이다. 현재는 한은 지역본부가 해당 지역경제 특성에 맞는 중소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총액한도대출을 지원했지만 앞으로는 취약 부문에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신용등급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총액한도대출액 7조5000억원 중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도입된 ‘중소기업 패스트트랙 프로그램’ 연계자금 1조원은 단계적으로 회수할 계획이다. 회수자금은 다른 취약부문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한은은 이와 함께 ‘단기 금리지표’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발행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한은은 올해 물가 관리 실패의 상당 부분을 대외여건 탓으로 돌렸다.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등 공급 측면의 충격이 컸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에 실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 지급준비율

은행이 받은 예금 중 한국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 한은이 지준율을 올리면 은행이 한은에 적립해야 할 돈이 많아져 시중자금이 줄어들고 지준율을 낮추면 시중자금이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