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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같은 휴가, 다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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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취재여록] 같은 휴가, 다른 풍경
    “휴가 중이라서 전화 끊을 게요.”(A사 직원)

    미안했다. 그가 이번 주 휴가 중인 걸 깜박했다. “죄송합니다”라고 얘기하고 그와의 통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취재를 그만둘 순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내용을 알 만한 A사의 다른 직원에게 전화했다. 휴대폰 번호를 누르면 누를 수록 그에게 더 미안해졌다. 3명에게 전화했는데 전화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A사는 이번 주부터 내년 초까지 긴 ‘연말 권장 휴가’에 들어가 대부분 직원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황금 같은 시간에 기자 전화라도 받아준 그에게 눈물나게 고마울 정도였다.

    차선책으로 A사 사무실 유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출근자가 한둘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예상 외로 절반가량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서 지금은 알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마음이 급해졌다. 마감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차선책으로 경쟁사인 B사 직원에게 전화했다. “시간 없는데 전화 안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앞섰다. B사도 A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주부터 연말 휴가에 들어간 터다.

    다행히도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아뿔싸. 그도 휴가 중이었다. “휴가 중인데 다음에 통화하면 안될까요”라고 얘기하리라 생각했지만 웬걸. 그는 “그 내용은 저희 팀 C과장이 다 알고 있습니다. C과장 출근했으니 전화해보세요”라고 답했다. 달려가 껴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C과장과 통화하면서 알게 된 정보 덕에 겨우 마감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

    마감 후 B사 다른 직원에게서 휴대폰 문자가 왔다. “내일부터 휴가입니다. 저에게 문의할 내용이 있으면 OOO를 찾아주세요^^.”

    반면 기자 때문에 ‘부재 중 전화’가 여러 통 와있었을 A사 직원들은 아무도 콜백을 하지 않았다. 휴가를 방해받지 않고 싶었던 데다 A사 담당 임원도 한 주 내내 휴가 중이어서 더욱 안심이 됐을 듯 싶었다.

    A사와 B사는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시장에서 B사는 앞서고 A사는 뒤처지고 있다.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개인의 휴가를 방해해 미안했지만, 한편에선 작은 차이가 쌓여 승부를 가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정인설 산업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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