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천자칼럼] 부검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jhkim@hankyung.com
    [천자칼럼] 부검
    이집트의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굴된 것은 1922년. 그러나 그의 사인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독일 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지난해 유전자 분석과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동원해 투탕카멘 미라를 부검했다. 결과는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진 상태에서 다리 골절상을 입고 말라리아에 걸려 숨졌다는 것이다. 그가 죽은 시점이 BC 1352년이었으니 무려 3362년 만에 사인이 명확해진 셈이다.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된 얼음인간 외치(Oetzi)의 사망 원인은 화살이 쇄골하 동맥을 관통하면서 일으킨 과다출혈이었다. 미토콘드리아 분석 검사까지 한 결과, 그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이 5300년이 지난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검의 위력이다.

    부검은 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살피는 검안으로 시작된다. 냄새도 일일이 맡아본다. 그 다음 메스로 가슴부터 배 아래까지를 가른 뒤 장기를 살펴본다. 장기는 심장-폐-간-비장-신장의 순서로 떼어내 무게를 잰다. 출혈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머리는 마지막에 다룬다. 뇌를 떼어내고 경막과 두개골의 상태를 보는데 충격을 살피기 위해서다. 타살 흔적을 찾기 위해 근육 등에 남아 있는 상처 부위는 집중적으로 검사한다. 다양한 화학반응 검사와 생물학적 검사가 병행된다. 모든 검사가 끝나면 장기나 뼈를 제자리에 놓고 다시 꿰맨다. 완벽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부검의로서의 올바른 태도라니 무척이나 힘든 작업이다.

    17일 급사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이튿날 부검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발표한대로 급성 심근경색이라면 사망 직후 부검으로는 좀처럼 사인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장 근육 뒤쪽에 연황색이나 황갈색 띠가 나타나야 하는데 심근 괴사의 이런 흔적이 생기려면 적어도 반나절은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망 발표가 이틀이나 늦어진 데는 그런 이유도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의료계의 견해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망한 독재자의 권력을 넘겨받으려는 자들은 주요 인물들이 입회한 가운데 부검을 서두른다. 암살설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김정일의 부검에도 김정은과 장성택 김경희 리영호 등 실세들이 입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권력을 순탄하게 넘겨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부검이 이뤄졌다 한들 그 결과를 믿고, 믿지 않고는 또 다른 문제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jhkim@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아르떼 칼럼] 지금 화가 신사임당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한국 미술계는 여성 작가와 전통 미술을 다시 읽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여성 작가들의 실험성과 조형 언어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잇달아 선보였다. 2025년 9월부터 연 이불의 대규모 개인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환기시켰다. 또한 호암미술관에서 3월부터 개최될 예정인 원로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은 한 작가의 70년 예술 여정을 조망하는 자리다. 이런 전시들은 단순히 ‘여성 작가를 조명한다’는 차원을 넘어 미술사 서술의 관점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읽힌다.이 같은 흐름 속에서 신사임당을 다시 호명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는 오랫동안 ‘현모양처’라는 상징 속에 머물러 있었지만, 최근의 미술사적 관심은 그를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화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한국 미술의 위상은 작품의 질보다 그것을 읽어내는 해석의 밀도에서 갈린다. 우리는 고미술을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다뤄왔지만, 동시대 미술 담론 속에서 작동하는 언어로 전환하는 데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신사임당을 다시 읽는 작업은 한국 고미술을 미적 감상의 대상에서 조형적 사유와 시장적 잠재력을 지닌 자산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신사임당의 ‘묵포도도’는 단순한 소재 재현이 아니다. 윤곽선을 배제하고 먹의 농담과 번짐만으로 포도송이의 체적, 껍질의 긴장, 덩굴의 방향성을 조직한다. 이는 구조와 기운을 동시에 포착하려는 동아시아 회화 인식이 응축된 사례다. 화면 하단에서 상단으로 이어지는 덩굴의 흐름은 평면에 암묵적 공간을 형성한다.‘초충도’ 또한 자연 관찰의 기록을 넘어선 시각적 편집의 결과다. 수박 오이

    2. 2

      [천자칼럼] 신조어 제조기 월가

      미국 월가의 경쟁력 중 하나가 신조어와 약어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능력이다. 입에 착 감기는 맛깔난 용어를 통해 복잡한 시장 상황, 기술 변천, 자금 이동 경로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2000년대 초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할 4개 신흥국을 지칭하는 브릭스(BRICs), 2000년대 후반 재정 위기에 휘말린 남유럽 5개국 피그스(PIIGS), 2010년대 미국 금리 인상 등 외부 충격에 취약한 신흥 5개국을 가리키는 프래자일파이브(Fragile Five) 등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의 엘리트 경제학자들이 작명했다.월가 신조어가 집중된 분야는 물론 증시 주도주다. 미국 7대 빅테크(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를 묶은 말이 ‘매그니피센트7’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한 투자전략가가 1960년대 서부영화 ‘황야의 7인’에서 따왔다. 매그니피센트 7개 기업의 첫 글자 ATMMAAN에 브로드컴을 포함한 8대 대형 기술주가 배트맨(BATMMAAN)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작년에는 과격한 관세 폭탄 발언 뒤에 결국은 현실적으로 타협하는 패턴을 역이용해 단기 수익을 노리는 ‘TACO(Trump Always Chicken Out) 트레이드’가 최고 유행어였다. 인공지능(AI)을 빼놓고 증시 트렌드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한 지금, 새롭게 등장한 월가 테마주 이름이 ‘헤일로(HALO) 트레이드’다. Heavy Assets, Low Obsolescence의 약자로, 막대한 자본 투자에 따른 높은 진입 장벽으로 진부화, 곧 도태 위험은 낮은 산업군을 뜻한다. 인프라, 전력망, 철도, 에너지, 중장비 등 실물 자산에 기반한 업종이다. 챗GPT나 제미나이가 소프트웨어 기업은 파괴할 수 있어도, 전기를 생산하거나 직접 땅을 파는 일

    3. 3

      훼손된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노사협상으로 날 샐 판 [사설]

      지난 15년간 노사 간 교섭의 기본 틀로 기능해온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이 크게 훼손됐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란봉투법 시행(3월 10일)을 불과 열흘가량 앞둔 어제 발표한 ‘교섭 절차 매뉴얼’에서 “원·하청 노조 간 단일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적시했다.매뉴얼대로면 원청 사업자는 원청 대표노조와 하청 대표노조 등 최소 2개 이상 노조와의 교섭이 의무화된다. 복수 노조가 허용된 2011년 이후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명시하도록 한 노동조합법에 배치된다. 하위 법령으로 상위 법인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법의 위임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작년 9월 노란봉투법 입법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 철폐’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거대 노조를 막판에 일방적으로 편든 모양새다.지난 23일 시행령과 해석지침 최종 발표 때까지만 해도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유지했으나 불과 나흘 만에 뒤집은 것도 논란 거리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는 진짜 사장과 교섭하고 싶어 하며 교섭 분리로 입법의 취지를 더 잘 살릴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공감하기 어렵다. 하청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려면 원청노동자까지 포함한 교섭창구 단일화가 필요하다던 종전 입장을 바꿀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이대로라면 원청 사업자는 수십·수백 개 노조와 무제한 교섭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노조 입장에서는 근로조건·고용 형태가 비슷한 하청노조끼리 연대하는 등 다양한 교섭 전략 구사가 가능해졌다. 앞서 시행령 등에선 ‘하청노조 간 이해관계의 공통성’과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