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국회 상임위원장에 당 사무총장까지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예요. 여기서 멈춰도 돼요.”

17년을 달려온 정치인의 길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정장선 민주통합당 의원(53·경기 평택을)에게 부인 이성숙 씨(47·여중 교사)는 “할 만큼 했다” 는 말로 마음의 짐을 덜어줬다. 해병대 막사에서 TV를 통해 아버지의 19대 총선 불출마 소식을 접한 큰 아들 한범씨(22)는 “아빠 잘했어요”라며 격려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배지’ 로 상징되는 국회의원은 흔히 마약과 같다고 한다. 한 번 배지를 달면 웬만해선 그만두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 의원은 스스로 배지를 버리려 한다. 경기 평택에서 내리 3선을 했다. 경쟁자도 없다. 게다가 난장판 속에서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최고의 상임위로 이끄는 등 평가도 좋았다. 그래서 모두들 4선은 ‘떼어 놓은 당상’ 이라고 했다.

제2의 인생을 고민하는 나이인 53세(58년생)에 현역 3선 의원이 스스로 4선 고지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고민도 많이 했다. 얼마전에 대학(한국기술교육대)에 수시합격한 둘째 아들(한얼·18)은 학창시절 친구들이 국회의원 욕하는 게 듣기 싫어 아빠가 의원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렸다고 한다. 어쩌면 그때부터 정치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 621호에서 만난 정 의원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그는 “이 방이 국회 본관과 한강까지 다 보여 의원회관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데…” 라며 17년 정치 인생의 쉼표를 찍는 소회를 담담히 털어놨다.

▶언제부터 불출마를 생각했나.

“지난해 4대강 예산 처리로 국회가 난장판이 됐을 때 속으로 많이 울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나. 노력을 해보고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국회를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국회가 문제라면서도 상대방을 향해 책임지라고 소리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나라도 책임지고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국회를 바꿔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내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합의 처리하자고 주장했는데 당 안팎에서 좋지 않은 소리만 들었다. 한·미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최루탄까지 터졌다.”

▶경기도지사 출마 얘기도 나온다.

“내년 김문수 지사가 (대선에 나가기 위해) 그만두고 재선거가 치러진다고 해도 나설 생각이 없다.”

▶후회없나.

“내년 총선에 나가면 4선이 될 것이고 그러다 국회부의장하면 되는데 왜 그만 두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내 머리가 복잡하고 지쳐 있는 상태에서 국회의원 선수만 하나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진정 내가 국가에 도움이 되고 있는 지를 끊임없이 반문했다. 이젠 그런 부분에 한계가 온 것 같다.”

▶불출마 선언에 앞서 가장 흔들렸을 때는.

“해병대에 있는 큰 아들은 ‘아빠 멋있게 잘했다’ 고 하더라. (정 의원의 장남은 천안함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5월 자원해서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노력했는데 잘 안 돼서 아빠가 정치를 그만두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럼 아빠가 정치를 계속해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묻더라. 그때 살짝 흔들렸다. 4선을 달고 국회에 들어가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그전에 숱하게 한 끝에 결론을 냈지만 아들이 그러니까 순간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아내는 섭섭했을 것 같은데.

“아내가 서운한 게 왜 없겠나. 아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내가 정치하는 거 알았으면 결혼 안 했을 텐데…’다. 도의원 할 때는 명예직이라 돈 한푼 못 갖다 줬다. 아내 혼자서 선생님하며 살림을 꾸려왔다. 아내는 나 대신 행사장에도 가면서 1인3역을 했다. 그러는 동안 둘이서 변변한 해외여행도 못 갔다. 늘 미안했는데 지금은 아내도 굉장히 홀가분하게 생각한다. 아내가 농반진반으로 ‘능력에 비해 사무총장까지 했으면 엄청 출세했다. 이제 내려놔도 된다’고 했다.” (정 의원의 1년 자동차 주행거리는 10만㎞를 넘는다. 평택에서 국회까지 70㎞ 거리인 점을 감안하며 하루에 두 차례씩 왕복한 셈이다. 새벽 회의부터 한밤 상가로 이어지는 생활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하다 보니 2004년 12월엔 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도중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직행하기도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계획인가.

“이제 벌이가 없으니 생계를 고민해야 한다. (지난 3월 공직자위원회가 공개한 정 의원의 재산은 3억9800만원이다) 한때 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둘째가 합격한 한국기술교육대가 등록금이 일반대학에 비해 싸다. 아이들도 크고 모친을 모시고 있어 30평대 아파트가 좁아 2006년 3억4000만원을 주고 48평으로 이사했다. 절반 가까이(1억6000만원)를 빚으로 감당했는데 지난 3월 다 갚아 다소 홀가분하다. 지출도 대폭 줄이되 현장을 많이 다닐 계획이다. 국회의원 하면서 혜택을 많이 봤기 때문에 당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하겠다.”

▶30대 중반에 정치에 입문했는데.

“청와대에 있을 때 지방자치 관련 법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러면서 시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1995년 2월 선거에 뛰어들었는데 두 달 뒤에 평택과 송탄이 통합되면서 할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평택에서 무소속 도의원으로 출마했다. 5년간 도의원을 하면서 빚만 6000만원 늘었다. 아내는 ‘부모님 부양하고 애들 키우는 데 내 월급만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 한 달에 20만원씩만 보태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참 비참하더라.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에 도전해서 떨어지면 정치를 접을 것을 약속하고 2000년 총선에 나왔다. 당시 돈이 없어 카드에서 1000만원을 신용대출 받기도 했다. 다행히 도의원 활동한 게 좋게 평가받아 무난히 당선됐다.”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가.

“정치를 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지만 틈나는 대로 애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큰 애가 지금 러시아학과(부산대)에 다니는 데 내가 추천해서 간 거다. 내가 4년 전에 러시아를 둘러보고 에너지 자원이 풍부하고 땅이 넓어 앞으로 엄청난 나라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러시아 자원에너지 전문가가 돼 보라고 했다.”

▶정치권이 불신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의원 한 사람이 바뀐다고 해도 소용없다. 제도적 측면에서 국회가 허술한 게 많다. 정부가 예산을 짜오면 상임위에서 심의를 졸속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도 있게 정책심의하고 예산안도 정부와 국회가 사전 협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 당론이 너무 강하다는 것도 문제다. 중요 사안은 당론으로 결정하니까 당론이 벽에 부딪히면 모든 게 스톱된다. 합리적 비판이 안 먹히고 대화와 타협하는 국회 기능이 약해진다. 또 바깥 갈등 구조가 국회 안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바깥 목소리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여야 지도자와 대통령이 ‘맞아 죽더라도 합의해야 한다’고 나서지 않으면 국회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18대 국회에선 몸싸움이 특히 심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땐 여소야대였지만 예산안은 합의처리를 했었다. 대통령이 국회를 어떻게 보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 같다. 대통령이 국회에 안 좋은 감정을 갖거나 함께한 기간이 짧으면 문제가 잦은 것 같다.”

▶정치 신인들에게 하고픈 조언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가 확실해야 한다. 정치를 하려는 목표가 분명해졌을 때 어떻게 정치를 할지에 대한 답도 구해야 한다. 매일 기도할 때마다 ‘제가 제대로 정치하고 있습니까’ 물어왔고 불출마가 그 답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가족의 희생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돈도 많이 드는데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불출마 선언 후 ‘물갈이’가 힘을 받고 있다.

“선거 때마다 호남물갈이를 한다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호남정당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근본적으로 해야 한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라는 게 민주적이긴 하지만 기득권인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다. 당 예비심사 과정에서 현역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정하는 등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현역 지역위원장이 다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 정장선 의원은…온건한 중도 성향의 3선 의원

정장선 민주통합당 의원은 온건하고 합리적인 중도 성향의 3선 의원이다. 1958년 경기 평택에서 태어난 정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 정무과장으로 근무하다 1995년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2000년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경기 평택을)에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정 의원은 18대 국회 상반기 지식경제위원장을 맡으면서 지경위를 고성과 파행, 정쟁이 없는 ‘3무(無) 우수 상임위’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9일엔 전국소상공인연합회가 선정한 최우수 의원으로 뽑혀 ‘초정 대상’을 수상했다. 대학생이 뽑은 ‘거짓말 안 하는 정치인 베스트5’, 6년 연속 시민단체 선정 우수 국정감사 의원에도 뽑힌 바 있다. 지난 4월 민주당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당 정책위수석부의장, 정책연구원 수석부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몽골친선협회장, 대한택견연맹회장을 맡고 있다. 중동고, 성균관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김형호 /허란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