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냄새·왁자지껄 소리…골목길은 살아있다
대구는 골목의 도시다. 약전골목·미싱골목·다기골목·진골목·돼지국밥골목·찌짐골목·카페골목·클럽골목·통신골목…. 서울 부산에 이어 전국 3대 도시로 명성을 날려온 대도시 중심부에 웬 골목이 이렇게도 많을까. 대구 중구에만 1000여개의 골목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가히 ‘골목광역시'라고 할 만하다.

◆역사를 만나는 골목

대구 지하철 2호선 서문시장역과 반월당역(반월당 네 거리)의 중간쯤에 있는 계산오거리 이상화 고택에서 골목투어를 시작한다. 대로에서 북쪽으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즐비한 고층빌딩 사이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의 옛집이 섬처럼 남아 있다. 안채와 바깥채에 시인의 작품세계와 작품들, 문학서적과 원고 등을 전시해 놓았다.

이상화 고택 맞은편 골목의 한옥은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선생의 고택. 하늘 높이 솟은 주상복합 빌딩 아래 단층의 한옥들은 수평과 수직의 공존하는 세계를 연출한다.

이상화·서상돈 고택에서 나와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꺾어 돌면 이상화의 형이자 항일독립투사였던 이상정 장군의 옛집을 만나게 된다. 단층 한옥인데 ‘성내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이다. 그 옆의 한옥은 대구상업회의소 초대회장으로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가담한 박기돈 선생의 옛집이다.

여기서 조금 걷다보면 그 옛날 부산동래포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열나흘 정도 걸리던 영남대로 구간이 지금은 대로 뒤편의 골목길로 옛 역사를 전한다. 지게를 진 상인과 저잣거리 풍경을 그린 골목 벽화가 영남대로의 옛 모습을 상상케 한다. 영남대로는 떡집들이 즐비한 염매시장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그 유명한 약전골목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지금도 한약방과 한의원이 즐비하고 한약 냄새가 진동한다.

약전골목에서 종로로 접어들면 또다른 명소 진골목이 기다린다. ‘긴 골목’을 뜻하는 진골목은 원래 대구의 대표적 부촌이었다.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 명예회장, 향토 소주회사 금복주 창업주인 김홍식 회장, 일제강점기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 서병원 등의 저택이 여기에 있다. 대구 최초의 붉은벽돌 이층집인 정소아과를 비롯해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주요 무대가 된 백록식당, 대구와 인근 도시는 물론 서울·부산에서도 손님이 찾아오는 명소가 된 미도다방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

◆진화하는 골목길

대개 골목은 옛 도시의 흔적이요 사라져가는 유산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구에는 지금도 새로 생겨나는 골목까지 있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한다. 약전골목 진골목 코스가 고즈넉한 옛모습의 골목이라면 중앙로를 건너 동쪽에서 만나는 골목들은 약동하는 젊음의 현장이다.

경상도 말로 전을 뜻하는 ‘찌짐’ 한 접시에 막걸리와 소주를 놓고 학문과 인생을 논했던 학사주점 골목, 옷가게와 구두가게 등이 촘촘히 붙어 있는 야시골목,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생겨난 통신골목, 남성용품 가게들이 밀집한 늑대골목 등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납작만두·양념오뎅·오징어찌짐 등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한 교동 먹자골목, 향촌동 찌짐·막걸리 골목,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으로 유명한 녹향골목, 도깨비 시장 외제품 골목, 동인동 찜갈비골목….

그 중에서 활기찬 곳은 청춘들이 즐겨 찾는 2030골목. 좁고 어둑어둑한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굽고 지지는 냄새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하다. 대구의 현재를 보려면 골목으로 들어가 볼 일이다.

■ 여행팁

고소한 냄새·왁자지껄 소리…골목길은 살아있다
대구 골목투어는 어디서 시작해도 관계 없다. 최대번화가인 동성로를 중심으로 어느 방향이든 1시간 남짓이면 둘러볼 수 있다. 대구시와 중구청(053-661-2191~5)이 운영하는 도심문화탐방 골목투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골목투어는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과 셋째 목요일 오전 10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경상감영공원~향촌동~대구역~달성공원을 잇는 ‘달구벌 그때 그시절' 코스, 동산선교사주택~3·1운동 만세길~계산성당~이상화고택~제일교회~진골목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화의 발자취’ 코스가 있다. 따로국밥, 소막창구이, 뭉티기 생고기 등 ‘대구 10미(味)’를 중심으로 한 맛투어도 진행한다. 셋째 금요일 오후 7시에는 반월당~관덕정~계산성당~성밖골목~약령시 등을 둘러보는 문화재 중심 야경투어를 진행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