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역 2조弗 경제정책 새 판 짜라
올 한 해 동안에도 세계 경제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한국은 두 가지 뜻깊은 경제적 업적을 성취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수출입액 1조달러를 달성한 일이다. 문제는 외형 성장과 함께 이로 인한 대내외 여건도 급변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한·미 FTA는 미국의 거대한 시장을 얻는 반면 우리 시장 역시 열어야 하는 부담을 진다.

무역 대국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은 경제사에 기록될 만하나, 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이전보다 더욱 어렵고 힘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시장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고 부가가치가 더욱 높은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까닭이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 속에서 소모적인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 있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성장 체제’라는 또 다른 경제 목표와 전략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의 핵심 방향은 단연 국내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 확보다. 경쟁력이 있어야 더 큰 시장에 진출할 수 있고 국내 시장도 지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 추진했던 경제 정책들을 재점검하고 새롭게 보완 설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내걸었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책의 추진력을 살려야 한다. 국내에서 투자와 생산을 해도 어느 시장에든 팔 수 있고 내수 시장을 지킬 수 있는 제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제 철폐, 각종 부담 감소 등 제반 경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너무나 타당한 정책 목표다. 투자 환경 악화로 대부분의 제품 생산이 중단돼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상품이 사라진 미국에서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다시금 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음으로는 ‘신성장 동력 육성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각 정부는 이를 핵심 정책으로 설정하고 매년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의 추진 과정과 성과를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는 일은 거의 등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과 같은 신성장 투자 분야에 과잉 생산 현상마저 나타난다. 미국 정부가 지원한 태양광업체인 솔린드라사의 파산과 같은 부작용이 한국에서도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제 10년 이상 노력해 온 결과를 냉정히 분석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한편, 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같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 이를 일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는 지식 창출과 확산 체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을 모방 추격하는 과정에서 국내 연구기관들은 각 분야별로 자신의 역할을 다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 선진국을 능가하는 지식을 창출하고 축적하기 위해서는 연구소, 대학, 기업 등 국내 모든 지식 창조와 활용 기관들의 보다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요구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정책의 실효성도 좀 더 객관적으로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 과실을 나누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축소지향적이고 시혜적 관계 설정에 골몰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해 스스로 실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확대지향적이며 진취적인 정책 방안이 보다 적극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특히나 한·미 FTA를 계기로 자동차와 정보통신 산업은 물론이고 항공우주 산업과 같이 대량의 부품과 소재가 필요한 분야에 국내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미 FTA를 이루고 거대 무역국이 된 한국 경제가 자손만대의 지속 성장을 위해 치러야 할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유병규 <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