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뮤지컬에 '무릎'…확 바뀐 송년회
주말을 하루 앞둔 2일 저녁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1200석).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현장에 남녀 직장인 300여명이 몰렸다. 이들은 ‘문화 송년회’를 즐기러 온 국민은행 임직원이다. 지난달에는 KT와 DHL코리아 두산그룹 메트라이프생명 코스콤 서울시청 대한상공회의소 등 10여개 기업 직원 6000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달 예약자도 하나은행 롯데정보통신 우정사업정보센터 등 18개 기업 4000여명에 이른다.

한남동 블루스퀘어(1700석)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조로’의 11~12월분 5차례는 기업 단체 관객 몫이다. 샤롯데씨어터의 ‘캣츠’ 단체 예매율도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직장인들의 송년회 코드가 ‘술’에서 ‘문화’로 바뀌고 있다. 먹고 마시는 회식 대신 고급스러운 공연 관람으로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이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공연장마다 넥타이 부대가 넘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0명 중 7명은 먹고 마시는 송년회에 반대’ ‘응답자의 58.9%가 공연 관람 등 문화 송년회를 원한다’는 직장인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CJ E&M의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 공연장에는 삼성의료원 명문제약 삼성제일병원 등의 단체 관객 56개 팀이 다녀갔다. 이달분 예약도 68개 팀이나 된다.

뮤지컬 제작사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팀장은 “공연 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기업의 중심 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단체 구매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대규모 공연장을 통째로 빌려 프로그램을 자체 기획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STX그룹은 10,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대관, 총 4회 공연에 1만여명을 초대하는 대규모 콘서트를 연다. 임직원과 가족, 주요 고객들을 초청하는 이 행사는 방송인 손범수·진양혜 부부가 진행을 맡고 세시봉의 윤형주 이장희, 뮤지컬 배우 김소현 손준호, 소프라노 김수연, 바리톤 서정학 등이 참여한다.

STX그룹 관계자는 “유흥 위주의 송년 문화를 지양하고 그룹 임직원과 가족들이 동참하는 감성 경영의 일환으로 송년음악회를 계획했다”며 “창원지역 직원들을 대상으로 22일부터 5일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관람하는 행사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14일 전체 직원 1600명이 즐기는 ‘대웅고수’ 송년 공연을 마련한다. 사내 벨리댄스팀, 색소폰 연주자 그룹, 밴드 등이 참여하고 가수들을 초청해 삼성동 본사 옆 별관 ‘베어홀’에서 진행한다.

대웅제약 홍보팀의 배시내 과장은 “신바람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직원이 다함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2006년부터 진행 중인 제야음악회를 3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고, 외환은행은 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송년음악회-한강 칸타타를 진행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직 내부의 동아리 활동 등이 연말 송년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며 “그동안 경제와 정치 문제에 민감하던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엄동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천편일률적인 송년회보다 새로운 아이디어, 추억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 송년회가 더 의미있다”며 “개인적인 시간을 중시하는 풍토가 생기면서 1주일이나 1개월 전에 미리 모임을 고지한 뒤 창의적인 모임을 통해 동질감을 키우는 신세대의 의식도 이 같은 트렌드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