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의 원작자인 소설가 공지영씨는 29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주최한 공개토론회에서 “성범죄가 살인만큼 큰 범죄라는 인식을 위해서라도 처벌이 막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아동·장애인 성범죄 양형의 개선방안에 관한 공개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한 공씨는 대학 재학 시절 성범죄의 대상이 됐던 경험을 소개하며 “성범죄에 대해 가벼운 형을 내리는 이유는 제 오래된 의문”이라며 “실제로 성적 접촉을 당하지도 않았고 당시 성년이었음에도 그후로 1년 반 동안 밤에 혼자 걸어다닐 수도 없을 정도로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공씨는 “내 인생을 뒤집어놓은 성적 폭력을 행한 그 가해자가 잡혔다면 몇 개월의 형을 받았을까 오래 생각했다”며 “소설 ‘도가니’의 아동들은 나이가 어리고 부모님이 없는데, 이 아이들에게 성범죄가 미칠 영향이 살인보다 덜할지 의문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화학적 거세, 전자발찌 처벌 대상은 전체 가해자의 1%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고, 2008년부터 3년 동안 양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영식 변호사는 “20년 동안 재판 업무를 하면서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지독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로 불편한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았다”며 “‘나영이 사건’ 후 양형위에서 아동 성폭력범죄 양형기준을 보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범죄 양형기준 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 같지만, 형을 정하는 과정에 대해 의견을 들어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형위는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 등을 수렴해 12월 19일 전체회의를 열고 논의할 예정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