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는 살아있다] 통신용 전신주 설치비 70만원…인ㆍ허가 비용은 200만원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1월 “규제 전봇대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한 지 4년 가까이 지났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불필요한 규제를 법제화 단계에서 걸러내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민·관 합동 규제개혁추진단을 만들어 기존 규제 해소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규제들이 산업현장의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 많은 기업은 지금도 △복잡한 인허가 및 안전검사 절차 △부동산 거래 제한 규제 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꼬집고 있다.

획기적인 규제 개혁을 위해선 낡은 규제와 중복·모순 규제를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규제하는 ‘네거티브 법제’의 전면적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기업활동을 옥죄고 있는 규제 전봇대 사례를 짚어본다.


◆ 이동통신용 전봇대…전봇대 하나 세우는데 인·허가 14단계

지목 변경 등 각종 허가…땅 파기까지 두 달 걸려

['전봇대'는 살아있다] 통신용 전신주 설치비 70만원…인ㆍ허가 비용은 200만원
KT와 SK텔레콤 등 통신업체들은 전화와 인터넷 품질을 높이기 위해 통신용 전봇대를 설치할 때마다 설치비의 세 배에 이르는 돈을 인허가 비용 등으로 지출하고 있다. 농지 또는 산지 전용허가 등 각종 규제로 인허가 절차가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통신용 전봇대 공사비는 약 70만원이다. 하지만 설계도 작성과 용역비(105만~140만원), 경계와 분할측량비(40만~60만원) 등 인허가 비용이 전봇대 하나당 145만~200만원이 든다.

비용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절차를 거치려면 두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통신용 전봇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구입한 후 지목을 변경해야 한다.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해당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1㎡ 정도의 농지나 임야의 용도를 변경하려면 개발행위허가, 농지전용허가, 산지전용허가, 문화재형상변경 등 많게는 총 14단계의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고 평균 60일 정도 걸린다.

KT 관계자는 농어촌 주민과 통행인의 편의를 위해 매년 통신용 전봇대를 1000건 이상 설치하면서 농지전용, 산지전용 인허가 비용으로 11억410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행법 안에서 통신용 전봇대를 생활필수시설로 보지 않아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계속 발생한다”며 “농어촌 등 낙후지역의 통신 인프라 개선을 위해서는 농지나 산지 전용허가 대상에서 통신용 전봇대와 철탑 등을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이에 대한 규제 완화를 시도했지만 해당 부처인 산림청과 농림수산식품부에서 행정업무 지침은 바꿀 수 있지만 법제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무산됐다.

통신업계는 “해당 부처는 철탑 전봇대 규격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철탑 전봇대를 설치하는 것은 전자파 민원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16m 이하의 통신용 전주로 하자고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