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캠퍼스서 만난 '36년 友情'…노사ㆍ경영ㆍ재테크 3총사
“김영배, 손병복, 김영배, 손병복, 김영배, 김영배….”

1976년 봄 서울 흑석동 중앙대 정경대(현 교양학관) 건물. 2학년 1학기 경제학과 75학번 과대표를 뽑는 현장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55)과 손병복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54)이 35년 전 과대표 선거에서 한판 붙었다. 전체 80명이 정원이었지만 70여명이 투표에 참여해 김 부회장이 손 부사장을 단 한 표차로 누르고 과대표에 당선됐다. 김 부회장은 등록금 인상 저지와 월 1회 미팅 주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부산 출신인 김 부회장은 같은 학교 무용학과에 재학 중인 친구(지금의 아내)를 일찌감치 사귀고 있던 터라 만남 주선에는 자신이 있었다.

지난 9일 모교에서 이들을 만난 이윤규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 자금운용관리단장(55)은 “야 그때 내가 너(김 부회장) 찍어서 된 거야”라며 웃으며 말했다.

이들 셋은 중앙대 경제학과 75학번 동기들이다. 김 부회장은 부산, 손 부사장은 경북 울진, 이 단장은 충남 부여 출신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 때 만나 36년째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김 부회장이 말했다. “예술대학 건물로 가려면 우리(정경대) 건물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때는 창밖을 내다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지?” 가수 전영록(74학번)을 비롯해 유지인 이효춘 서갑숙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이들과 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다. 중앙대 설립자인 임영신 전 이사장의 개교 이념이 새겨져 있다는 청룡상 근처에 이르자 이들의 학창 시절 이야기는 절정에 달했다.

김 부회장과 이 단장이 더욱 가까워진 건 함께 등록금 인상 반대시위를 하면서부터였다. 김 부회장은 과대표로 1976년 학교 측이 특수교재비 명목으로 등록금을 2만원 올린 데 대해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 시위는 ‘학도호국단 폐지’ ‘민주주의 쟁취’로 이어졌다. 최루탄이 김 부회장 근처로 떨어져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상황에서 이 단장이 손수건을 건넸다. 김 부회장은 그 손수건이 너무나 고마웠다.

손 부사장은 학군단(ROTC)을 지원해 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직한 김 부회장과 4년 내내 학교를 함께 다녔다.

이들 셋은 사회에 나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줄곧 두 달에 한 번 만난다. 김 부회장은 1979년 경총에 입사한 뒤 미국 조지아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를 거쳐 다시 경총으로 복귀해 국내 최고의 노사관계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

손 부사장은 삼성조선(현 삼성중공업)과 그룹 비서실에 근무한 뒤 삼성엔지니어링 사업부장에 오르기까지 산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1세대 펀드매니저인 이 단장은 한국투자신탁과 동부자산운용 부사장을 거쳐, 사학연금에서 10조원 가까운 자금을 굴리고 있다.

손 부사장은 “요즘은 수주 때문에 1년에 반 이상 해외에 머무르다 보니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국내에 장기간 머물게 되면 제일 먼저 일정을 잡는 것 중 하나가 이 친구들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가능하면 주말에 만나 등산이나 한강변 마라톤을 주로 한다. 불수사도북(서울 근교 5대산) 종주에다 보스턴 뉴욕,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있는 이 단장이 “이제는 정말 건강 챙길 때”라며 등산행을 주도한다.

셋은 직장 생활을 마치고 나면 ‘재능 기부’로 우정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재테크와 노사관계, 경영 컨설팅에 있어 분명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김 부회장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봉사에도 세 친구들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며 말을 아꼈다.

주로 강남이나 여의도에서 만나다 오랜만에 캠퍼스를 찾은 이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곳은 근처 순대국밥집이었다. “영배야 기억나냐? 그때 순대는 없이 국물만 놓고 깡소주만 걸쳤는데…. 이 집 머리 고기 맛있었지. 오늘은 실컷 먹어보자. 하하.”(이 단장)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