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차나 구급차는 지난해까지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지 않았다. 공공서비스를 위한 차량 운행이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도로공사로서는 이 때문에 수입이 깎이는 게 아까웠다. 공익서비스용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돈을 내도록 관련법을 바꾸고 싶었으나 입법과정에서 겪어야 할 절차들이 걸림돌이었다.

정부 예산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법률을 만들려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예산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와도 협의해야 하고 규제개혁위원회, 차관회의, 국무회의도 거쳐야 한다. 결국 도로공사의 상위 부처인 국토해양부는 2009년 국회를 통해 관련법안을 입법화하는 ‘꼼수’를 생각해냈다. 의원을 통해 발의하면 복잡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발의된 ‘한국도로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약간의 수정만 거친 상태로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 예산 수백억원이 추가로 쓰이는 문제지만 별다른 사전 검토도 없었다.

국회는 규제 전봇대의 또 다른 한 축이다. 이 같은 ‘청부입법’이 주된 요인이다. 국회에서는 의안에 대한 검토 과정이 없어 부처들이 규제법률안을 만들고 싶을 때 국회를 ‘애용’한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부처의 이런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시민단체 등 국회를 감시하는 단체들이 주로 ‘발의 의안 수’로 의원들을 평가하는 까닭이다. 부처에서 법안 발의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받는 셈이다.

이렇다보니 대부분 규제법률안은 국회를 통해 만들어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18대 국회(2008년 5월30일~2011년 6월30일)에서 발의된 규제 신설·강화 법률안 1986건 중 1848건은 국회의원이 발의했다. 93%가 국회에서 나온 것이다. 또 18대 국회를 통과한 266건의 규제 중 82%인 219건이 의원발의 법률안이다.

신설된 규제들의 ‘품질’도 문제다. 정부에서 발의된 규제 법안은 여러 단계의 심사를 거치며 검증을 받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국무회의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의안의 타당성이 부족해도 발의자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를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발의 법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해 필요할 경우 ‘일몰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규제의 효력이 자동적으로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원입법은 논외다. 정부 관계자는 “의원들의 규제 법안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비현실적인 규제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의회 안에도 규제 검토를 위한 별도의 기구를 두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상·하원에 각각 규제개혁 소위원회와 행정위원회가 있다. 캐나다에도 상·하원 합동 협의회가 신설 규제를 심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정부 규제관리기관이 의원입법도 감독할 수 있게 한다.

임상혁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18대 국회를 놓고 보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수는 정부보다 7배나 많은데도 제대로 된 감시·검토 시스템이 없다”며 “정부입법이 전체 발의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유럽 의회에서도 법안 검토기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국회 내에도 규제심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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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 제보 이메일 sookim@hankyung.com